미국의 정치구조는 유럽에 비하면 단순해 보인다. 양당제 구도에다 각 당이 추구하는 바도 상대적으로 분명하고 지지정당에 대한 충성도도 높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감세를 기반으로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자는 반면, 민주당은 정부 기능 확대와 이를 위한 증세가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도 많은 정당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양당제적 성격을 보인다. 그런데 미국의 양당제와 다른 점은 서로 주장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념적으로는 한쪽은 ‘보수’라고 하고 한쪽은 ‘진보’라고 하지만 주장하는 바를 보면 진보와 보수가 혼재돼 정책적으로는 두 당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양당의 특징을 보여줄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견해라고 할 수 있는데 양당의 입장이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번 대선후보들의 주장을 살펴봐도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방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을 보면서 유추해보면 진보, 보수를 나눌 것 없이 정부의 역할을 대부분 확대하겠다는 방향에 방점을 찍고 있다. 후보들로서는 국민을 위해 이일 저일 하려고 하면 수족이 되는 정부 조직을 확대되고 재정 규모를 늘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실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쉽지만 이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많은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많은 정치지도자가 고통보다는 손쉬운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제공된 정부의 서비스를 줄이거나 없앤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지하철의 무임승차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지하철의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1984년 대통령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시행됐고, 그후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으로 확대됐다. 이런 정책 시행 과정에서 무임승차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지방정부나 지하철 운영기관의 의견을 구하거나 동의를 얻는 과정은 없었다.

지하철 운영기관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2019년 기준 무임승차비율이 전체 이용객의 18.6%에 달하며, 이에 따른 운임 수입의 손실금이 6455억원에 이르고 있어 지하철 적자의 60%를 차지한다. 이런 무임승차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령화 가속화에 따라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즉 중앙정부는 지하철 운영을 책임지는 지방정부가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지방정부는 이 제도의 처음 시행 주체인 중앙정부가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금을 정부가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지금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고 내년이면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정치적 상황과, 선진국에 진입해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사회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이제는 한 번쯤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이번 대선은 이런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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