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10명을 말해보라고 설문조사를 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다.

그럼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존경하는 자국 선조 10명을 설문조사하면 누구를 거론할까? 그 10위 안에 드는 인물을 우리는 몇 명 정도나 알고 있을까?

이 테스트를 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이웃 나라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우리 왕조 교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일본도 근대사에 오면 우리와 관련이 많다. 하지만 우리 근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2~4줄 정도의 설명에 그친다. 그래서 재야사학자 고(故) 남경태는 국사로 묶어놓지 말고 지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를 알면 우리의 역사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KBS ‘징비록’(2015년)은 기존 사극에 비해 지역사가 좀더 반영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사극이었다.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한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카운터파트를 잘 만들어놔야 한다. 조선 인물들의 캐릭터만 잘 구축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 대다수는 전쟁 상대방의 캐릭터가 지극히 단순화돼 있어 어떨 때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징비록’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 외에도 일본 측 ‘선봉’ 고니고니 유키나가(이광기)와 ‘리베로’ 가토 기요마사(이정용) 캐릭터를 단순 악역으로 묘사하지 않고 세밀하게 살려내 사극으로서의 흥미는 물론이고 전쟁의 맥락을 비교적 잘 제시했다.

일본 측 두 장수인 고니시와 가토는 대조적인 캐릭터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토는 잔인한 다혈질 사무라이다. 반면 상인 출신으로 부유하게 자란 고니시는 협상도 할 줄 아는 지략가다. 종교적으로 고니시는 기독교, 가토는 불교 신자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일본에서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동서합전)에서는 같은 팀내 라이벌이 아니라 완전히 적이 돼 싸우며 이전과는 바뀐 운명에 처하는 두 장수의 이런 모습은 이들 두 라이벌이 펼치는 숙명적인 대결과 심리, 처세술을 담고 있는 엔도 슈사쿠의 역사소설 ‘숙적(宿敵)’을 참조했다고 제작진이 밝힌 적이 있다.

구한 말로 오면 일본을 더 잘 알아야 우리 역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영웅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16~17세기 전국, 에도막부 시대 사람에서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등 메이지유신 시대 인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다.

일본인들은 ‘다크 히어로’를 좋아한다. 다크 히어로는 요절하는 경우가 많고, ‘소아(小我)’가 아닌 ‘대아(大我)’를 위해 일한다. 사카모토 료마는 이런 조건을 두루 갖췄다. 료마는 31세에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소아는 ‘작은 개인 일’이고, 대아는 ‘보다 큰 나라 일’이다.

일본은 국가를 구성하지 못하고, 수백 다이묘가 나눠져 분할 통치되고 있다는 게 료마에게는 콤플렉스였다. 료마가 샷조동맹을 성사시켜 국가를 만드는 작업인 메이지유신을 가능하게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일본의 근대화 시기 또 하나 두드러진 현상은 서양 배우기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메이지 유신 초기인1871년 단장 이와쿠라 도모미와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구치 마스카 등 메이지 시대 실력자 5명의 빛바랜 사진으로 알 수 있는데, 간단한 사절단이 아니다.

어린 유학생을 포함해 무려 108명이 미국과 유럽을 돌아보고 2년에 걸쳐 현지 문물을 익혀 철도, 제철, 교통, 토목, 건축, 해군 등의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동시에 서양의 기술자를 자국으로 초빙해 "일본 제자를 양성할 것" "자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때 돌아갈 것" 등의 조건을 반드시 이행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일본이 서양 기술자에게 왜 이런 조건을 요구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그들로부터 배우다 빨리 독립하겠다는 발상이다.(여기서 중국이 한국 PD와 작가를 불러 '플라잉 피디'라고 한 것이 연상된다) 서울의 역사적 유적이 된 구서울역, 구서울시청, 구한국은행은 그 때 서양 기술자로부터 익힌 기술과 서양 기술자의 직접 참가로 일제시대에 지은 건축물들이다.

KBS가 올해 안으로 정통 대하사극을 부활한다고 한다. 대하사극은 역사를 통해 좋은 것은 배우고, 잘못된 과거는 현재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뿐 아니라 지역사가 다각도로 반영된 입체적 조망을 기대한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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