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있는 ‘수궁가’의 재해석

현실의 무게 못 이겨 제 발로 수궁 찾아간 토끼

“토끼의 삼재팔란, 우리 현실과 닮아”

 고선웅 연출ㆍ한승석 음악감독 참여

국립창극단의 신작 ‘귀토’는 수궁가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현실의 고단함을 견디지 못해 제 발로 수궁을 찾아간 토끼의 성장담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토끼가 육지에서 겪는 갖은 고난과 재앙인 ‘삼재팔란’에 주목해 작품을 시작했다”며 “토끼의 삶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의 신작 ‘귀토’는 수궁가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현실의 고단함을 견디지 못해 제 발로 수궁을 찾아간 토끼의 성장담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토끼가 육지에서 겪는 갖은 고난과 재앙인 ‘삼재팔란’에 주목해 작품을 시작했다”며 “토끼의 삶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늘도 싫소. 땅도 싫소. 삼재팔란 그만두고 수궁 찾아 갈라요.” 토끼는 왜 죽을 고비를 감수하고 제 발로 바다에 갔을까. 2021년의 토자(兎子)는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도 고단하다. 하늘에서 아버지를 잃고, 땅에서는 어미를 잃으니 하늘도 땅도 원망스럽기만 하다.  

‘수궁가’ 기발하게 비튼 국립창극단의 신작 ‘귀토-토끼의 팔란’(6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지금, 여기’를 버리고 바다로 떠난 토끼의 성장담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토끼가 육지에서 겪는 갖은 고난과 재앙인 ‘삼재팔란’에 주목했다. 토끼의 삶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귀토’는 익히 알려진 ‘수궁가’처럼 ‘육지에 간을 두고 왔다’는 꾀를 내어 살아 돌아온 토끼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는다. 다만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서사로 전개된다. 모든 순간이 ‘고난의 연속’인 토끼가 스스로 산중을 버리고 ‘유토피아’인 수궁을 찾아간다는 것에서 이야기는 출발. 작품은 관객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새로운 세상(수궁)은 진정한 유토피아였을까.’ 고선웅 연출가는 “우리가 늘 꿈꾸는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다”며 “바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갈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대로 유연하게 흔들리며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단한 현실에서 살아갈 희망을 찾자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의식인 셈이다. 제목에서부터 그 의미를 담았다. ‘귀토’에는 ‘거북과 토끼’(龜兎)를 뜻하는 동시에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歸土)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다. 유토피아인 줄 알았던 수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와,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깨닫는 ‘귀토’는 바로 ‘2021년판 수궁가’다.

‘귀토’는 그간 국립창극단이 꾸준히 이어온 판소리 다섯 바탕(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보가)의 현대화 작업의 일환이다. 올해 ‘수궁가’를 선택한 것은 이 작품이 가진 해학미에 있다.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지난해 코로나로 모두가 우울했는데 올라오는 공연도 우울해서 관객들이 마음이 좋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면서 “한바탕 밝은 마음으로 재미있게 보고 속이 후련해지는 공연을 해보자고 해서 수궁가를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 제공]

작품은 고선웅 연출가를 만나 유쾌한 웃음을 더한다. 고 연출가와 국립창극단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 ‘흥보씨’(2017) 등 원전을 재해석해 무대에 올린 작품마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만큼 이번 신작을 향한 기대도 높다. 비극도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는 ‘애이불비’ 정서로, 해학미를 극대화한 고 연출가의 작법이 ‘귀토’를 통해서도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고 연출가는 창극을 특히나 매력적인 작업으로 꼽는다. 그는 “창극은 반짝반짝한 느낌이 있다. 창극을 하게 되면 정말 흥분되고 정화가 된다”라며 “연극은 분별하고 따지는데 여기는 같이 놀게 된다. 장단도 뮤지컬은 고치기도 어렵고, 오페라는 부담스러운 반면 창극은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유쾌하다”고 말했다.

원전을 재해석한 만큼 ‘귀토’에는 기존 수궁가에 없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토끼의 여자친구인 토녀를 비롯해 주꾸미, 전기뱀장어 등이다. 극의 중심 인물인 토자(兎子)와 자라는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맡았고, 토자와 함께 수궁으로 향하는 강단있는 여자친구 토녀(兎女)는 민은경이 연기한다. 유태평양은 “귀토는 연기, 소리 등이 복합적인 창극의 형태다. (자라라는) 한 캐릭터에 대해 세심하고 면밀하게 관찰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관객이 세밀한 캐릭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으로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빛깔을 띠게 된다. 고 연출가는 “토끼 혼자 수궁에서 육지로 오는 것은 그간 너무 많이 봤다”며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생기가 생기고, 노래 흐름과 템포, 극적 긴장감이 달라진다. 소리극이 가진 매력을 짜임새 있게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토녀의 존재는 이 작품에 색다른 장면과 소리의 조합을 연출한다. 고 연출가는 “토녀가 있을 때 생기는 소리의 조합도 창의적일 것”이라고 했고, 민은경은 “‘귀토’에선 수궁가 속 소리 이외에 다섯 마당의 여러 소리가 차용돼 색다른 묘미가 될 것”고 말했다.

토녀 역의 민은경⸱토자 역의 김준수⸱자라 역의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제공]
토녀 역의 민은경⸱토자 역의 김준수⸱자라 역의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제공]

한승석 음악감독과 ‘귀토’를 공동 작창한 유 예술감독은 “이야기는 각색했지만 음악은 전통 판소리에 뿌리를 뒀다”며 “장단이나 음색이 원작과 달라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라가 토끼를 등에 업고 용궁으로 향하며 부르는 ‘범피중류’ 대목은 느린 진양조의 원작과 달리 빠른 자진모리로 바꿨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토자의 설레는 마음을 신명나는 리듬에 실었다. 판소리의 ‘음악적 결’을 살리는 15인조 국악기 편성의 라이브 연주와 38명의 소리꾼이 기운찬 무대를 만들어갈 전망이다.

고 연출가는 “격조 있는 수궁가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될 것”이라며 “‘지금 여기’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