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한국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거나 퍼스트 무버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시해 시장을 개척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퍼스트 무버라고 한다. 많은 기업이 창의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도전에 나서지만 실제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하나의 새 제품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검증된 제품을 후발주자들이 쉽게 카피해 판매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들은 그간의 투자와 노력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결국 혁신에 대한 도전이 위축될 것이다. 많은 기업은 새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기에 앞서 개발한 기술을 특허로 등록해 무분별한 베끼기를 막고 개발이익을 보호하고자 한다. 제품에 적용된 기술을 특허 등록을 받으면 적어도 후발업체들이 동일 기술을 적용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은 법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허소송을 하다 보면 퍼스트 무버인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다. 실제로 국내 한 중소기업이 외국 회사들이 독점하던 화학물질 유출 감지 센서 분야에 도전해 최초로 쉽게 설치 가능하고 오감지 문제도 해결한 테이프 방식의 제품을 개발, 특허등록도 받았는데 마침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2015년 1월 강화된 화학물질관리법이 시행되자 관련 센서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이에 여러 후발업체가 시장에 뛰어들어 카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막기 위해 특허 침해 금지소송을 했으나 후발업체들이 역으로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수년에 걸친 지난한 소송전이 진행됐다. 2번의 소송에서 특허의 유효성이 인정됐으나 또 다른 업체가 제기한 3번째 무효 소송에서 새로운 증거를 이유로 특허가 무효라고 결정됐다가 특허법원에서 번복되는 등 7년에 걸쳐 수십건의 소송이 진행됐다. 특허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시장에는 카피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퍼스트 무버였던 중소기업은 특허소송에 대응하느라 막상 시장 확대에 따른 이익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현재 우리 특허제도는 특허 침해 금지 소송과 무효 소송이 별개로 진행되고, 무효 소송을 반복해 제기할 수 있는 데다 특허가 무효로 판단되는 비율도 50%에 이른다. 유효한 특허가 침해돼도 법원에서 인정되는 손해액이 소송비용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는 ‘공정’이다. 공정한 경쟁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경쟁의 룰에 대한 예측 가능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특허제도는 일정 요건을 갖춘 발명만을 특허로 보호하고 있고, 발명의 옥석을 가려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한편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하는 공정한 경쟁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산실로 성공한 데는 미국에서 특허권이 강력히 보호되는 덕도 상당할 것이다. 모쪼록 우리 특허제도가 제 역할을 해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로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장현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