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채 팔고 주식 사는 매매전략 유효
SC제일銀 박종훈 수석이코노미스트
작년 8월 연 0.5%로 최저점을 찍은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최근 연 1.7%를 넘어서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연초 시장에서는 기대대로 경기와 물가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장기 채권을 팔고 주식을 매수하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 전략이 우세했다. 그런데 최근 미 국채 금리의 상승 여파로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 때와 비슷하게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리플레이션 트레이드 전략도 끝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최근 금리 상승의 원인은 미 연준의 자유방임적인 태도가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이런 연준의 태도는 아직 금리 상승을 용인해도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향후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고용과 경기 개선에 영향을 미친다면 연준의 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 본다.
어빙 피셔의 통화방적식에 따르면 ‘명목금리=실질금리+(기대)인플레이션율'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할 때, 그들이 가진 자산의 향후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물가 상승률만큼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방정식의 또 중요한 교훈은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올라간다고 반드시 명목금리가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질금리가 하락할 경우 인플레이션율이 상승에도 명목금리가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언제 실질금리는 낮아지는가? 실질금리는 구조적으로 빈부의 격차 증가, 높은 저축률로 인한 자본의 잉여, 생산성 감소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 등 경제의 구조적 요인으로 하락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연준이 통화량 증가를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할 경우 실질금리가 낮아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연준은 양적완화를 통한 지속적 유동성 제공으로 실질금리를 낮춰왔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에도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확대 조치를 통해 실질금리의 지속적인 하락을 유도했다.
그랬던 연준의 태도가 최근 바뀐 듯하다.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최근 반 년 조금 넘는 기간에 연 0.5%에서 연 1.65%로 상승하는 동안 기대 물가는 1.57%에서 2.35%로 올랐다. 실질금리가 오히려 0.37%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명목금리를 통제해주리라 믿었던 금융시장은 연준에 실망한 듯하다. 2013년 긴축발작 때와 비슷하게 채권시장이 변동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말로는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제공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인 행동은 취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걸까? 우선 지속적인 양적완화를 통한 통화 공급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찍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명목금리를 낮추지만 중기적으로는 시장에 풀린 돈의 가격이 하락하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명목금리를 오히려 높인다. 아무리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이라도 돈을 계속해서 찍을 수는 없기에 연준은 정책의 시의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연준은 당장은 유동성 공급 수준을 더 높일 필요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금리 상승에도 시장의 유동성이 아직 풍부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피셔의 통화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이 줄어도 통화승수가 늘어나면 시장의 유동성은 증가할 수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경기에 대해 낙관적인 기대가 많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금리 상승에도 기업의 투자가 증가하면 시중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 증가하면서 유동성이 풍부하게 유지될 수 있다. 연준도 올해 미국 경제가 재정정책 효과로 6.5%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3년 긴축발작 때와 달리 시장의 유동성 지표(financial condition index)는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 얘기하고 있지만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 일부 우려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가와 임금과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곡선이 평평해지면 물가와 임금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임계치를 넘어 곡선이 가팔라지면 상당한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연준은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한 탓에 고용개선 상황에도 선제적인 인플레이션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적이 있고, 그 결과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연준이 선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일시적일 것이라 생각한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최근 연준이 보여준 자유방임적 자세는 아직 시장 유동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구태여 더 이상의 유동성을 제공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기저효과, 보복소비, 확대 재정 등으로 인한 경기 상승으로 2분기 물가상승을 피할 수 없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성장 궤도로 돌아가기에는 고용의 공백이 남아 있다고 본다.
만약 유동성 부족으로 경제성장과 고용에 부하가 걸린다면 연준은 양적완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일드 커브 컨트롤 등의 통화정책 수단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 본다. 지난 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의회 청문회에서 이런 입장을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올해는 금리 상승과 경기 개선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리플레이션 트레이드의 해가 되리라는 믿음이 우세했다. 그 믿음이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선은 미국 금리의 안정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믿음이 현실화되는 시기가 좀 늦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