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한 주식, 내려오게 마련”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미국 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투자 시장이 과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스팩의 향후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고 미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금융정보 분석업체인 S3파트너스에 따르면 미국 증시의 스팩에 대한 공매도 투자 잔액은 이달 9일 26억7000만달러(약 3조336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 7억2000만달러의 약 3.7배 수준이다.
지난달 한때는 스팩 공매도 잔액이 29억7000만달러까지 늘기도 했다.
유명 투자자가 투자하는 스팩 주가는 최근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주식이 공매도 세력의 주요 공격 대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유명 벤처 캐피털 투자자 차마트 팔리하피티야가 만든 스팩은 대출 스타트업 '소셜 파이낸스'와 합병을 계획 중인데, 이런 회사가 공매도 세력들이 즐겨찾는 타깃이 되는 것이다. 이 회사의 주식 중 공매도 주식 비율이 19%에 달했다.
전직 투자은행가 마이클 클레인이 만든 스팩인 '처칠캐피털 IV'는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와의 합병을 앞두고 이달 공매도 주식 비율이 5%로 2배 가량 뛰었다.
스팩과 합병한 기업에 대해 공매도 투자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머디워터즈 캐피털은 스팩과 합병해 지난 연말 상장한 급속충전 기술기업인 XL플리트에 대해 공매도 투자했다고 지난주 밝혔다. 머디워터스 보고서에 따르면 XL플리트는 판매 실적을 부풀렸고, 보유 기술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지난 12일 XL플리트의 주가는 12.7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 2일 13.86달러에서 13% 가량 내린 액수다.
이와 관련, XL플리트 측은 해당 보고서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내용이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전기트럭 스타트업인 로즈타운 모터스는 지난해 10월 스팩과 합병했지만, 공매도 전문 투자업체 힌덴버그 리서치가 부정적 보고서를 발표한 직후 주가가 지난 12일 17%가량 떨어졌다. 힌덴버그 리서치 보고서는 로즈타운 모터스가 투자자들에게 주문량과 생산량 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로즈타운 모터스 측은 이 보고서는 절반의 진실과 거짓말을 담고 있다고 반박했다. 로즈타운의 공매도 주식 비율은 3.4%에서 5%로 늘어났다.
머디 워터스의 설립자 카슨 블록은 "스팩은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면서 "스팩은 공매도 수익률이 너무 높거나 낮아 공매도가 어려운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스팩은 특정 회사의 상장을 목적으로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새 주식을 발행해 시장을 장악하고, 인수 및 합병의 가치를 끌어올려 유명인사와 같은 상징적인 인상을 남긴다. 온라인 스포츠 베팅회사 드래프트킹은 이런 과정을 통해 수백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스팩 주식을 사들이는 헤지펀드는 큰 리스크 없이 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신규 상장된 회사 주식을 정식 IPO를 통해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스팩 투자를 통해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맹목적인 스팩 투자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지난 10일 투자자 중에 유명인이 있다고 해서 그 스팩 주식을 사는 것은 좋은 투자가 아니다"라는 경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 증시는 최근 수개월간 거래가 계속된 가운데 최근 기술주나 고성장 회사 주식이 대량 매도되면서 김이 빠지는 형국이다.
금융정보업체 Indxx의 스팩 주식 지수는 지난달부터 이달 10일 사이에 17% 감소했다. 이 기간 나스닥 지수 역시 7.3% 빠졌다.
투자사 터틀택티컬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매튜 터틀은 "이러한 (스팩) 주식들은 최근 수개월간 주가가 급등하는 모멘텀주에 해당한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주식을 공매도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 투자사는 투자자가 스팩 주식을 보유하는 포트폴리오를 운용할 수 있는 ETF(상장지수펀드)를 운용한다. 또한 스팩 주식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디스팩'(de-SPAC) ETF 펀드도 시작할 에정이다. 이 ETF 펀드는 사기 의혹에 휩싸인 전기트럭업체 니콜라나 파산한 식품업체 호스테스 브랜즈 등의 주가 하락을 정면 겨냥한다.
합병 이후 기업들은 여러모로 공매도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된다. 상장을 통해 엄청난 자금을 동원했기에 해당 주식은 매수하기 쉬운 상태다. 또한 초기 투자자들은 스팩을 통한 상장 이후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매도를 열망하는 상태가 된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식이 과대평가됐다가 판단되면 즉시 매도하고 향후 값이 더 떨어진 뒤에 사고자 한다. WSJ는 이러한 공매도 전략은 최근 게임스톱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위험한 행위라고 전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결집해 주가를 떠받쳐 공매도를 한 세력들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매도 세력 또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 매입에 나서게 되고 결국 주가는 더 높아질 수 있게 된다.
WSJ는 애널리스트를 인용,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스팩에 투자하게 되면 공매도 세력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서 스팩 주식을 공매도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10달러였던 주가가 스팩과의 합병 이후 재평가되어 주가가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스팩과의 합병으로 상장된 회사 주식은 오르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너무 급등했다고 평가되는 주식의 공매도에 나서고 있다. 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 업체인 다니머 사이언티픽의 주가는 스팩과의 상장 이후 6개월간 3배 급등해 64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1월 다니머 주식 공매도 주식 비율은 1%대였으나 최근 8.5%로 급등했고 주가는 42달러로 떨어졌다.
스팩 주식이 떨어질 거란 예상 하에 '하락'에 베티하는 투자자들도 점점 늘고 있다.
공매도 전문 투자가인 에두아르도 마르케스는 미국 기업들이 스팩 합병을 통해 흥행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공매도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성격의 페르텐토라는 이름의 페지펀드를 올해 출범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상장된 기업 수는 1990년대 중반에 비해 줄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상장 기업이 늘고 있는데 스팩의 영향이 큰 상황이다.
스팩 기업의 인지도는 주식 판매에 큰 영향을 준다. 올해 골드만삭스는 스팩 투자의 손실 회피 목적으로 공매도 주식 목록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나 전기차처럼 스팩 공매도를 하나의 투자 옵션으로 여기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게리스데일 캐피털 설립자인 삼 아드랑지는 지난해 11월 상장한 냉동식품업체 태투드셰프 등 스팩 합병기업에 대해 공매도를 시작했다. 이 기업 주가는 상장 당시 한동안 높은 가격으로 거래됐지만, 최근 들어 13%가량 빠졌다.
아드랑지는 "이런 주식은 많이 올랐고, 이제 사람들이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면서 "이렇게 급등했던 주식은 다시 내려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