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 침체 공연계 활력소

“샤인머스캣이 열받았나보네. ‘뽁’!” 포도를 따 먹는 손짓과 소리까지 완벽했다. 초록 빛깔 얼굴을 한 엘파바를 향한 글린다의 빈정거림은 창의적인 데다 트렌디하다. ‘포도계의 슈퍼스타’ 샤인머스캣이 국내 과일 시장에 등장한 것은 2017년. 1년 전인 2016년 재연 당시 초록색 얼굴 탓에 ‘브로콜리’로 놀림 받던 엘파바는 5년 만에 ‘국내산’ 신품종 포도의 별칭을 얻었다.

뮤지컬 ‘위키드(사진)’가 돌아왔다. 무려 5년만. 12.4m에 달하는 타임 드래곤, 350여 벌의 의상, 화려하고 압도적인 스케일로 이끄는 마법 같은 세계는 지금 공연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숨 막히는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에 성공한 관객들은 한동안 침체된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이 작품을 예매 1위에 올려놓았다.

올해 공연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국내 뮤지컬 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옥주현이 초연(2013년) 이후 8년 만에 ‘초록 마녀’(엘파바)의 옷을 입었다. ‘위키드’ 한국 전 시즌에 출연, ‘글린다의 교과서’로 불리는 뮤지컬 배우 정선아와는 그야말로 “쿵짝이 잘 맞는다”(정선아). 두 배우의 ‘완벽’한 호흡은 ‘위키드’를 이끄는 큰 힘이다. 작품 역시 두 사람의 관계와 관계의 변화에서 주는 메시지가 크기 때문이다.

‘위키드’는 16개국에서 무려 6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뮤지컬’의 성공 공식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무대, 기발한 상상력, 묵직한 메시지가 한 접시 안에 담겨 삼위일체를 이룬다.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를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무대로 옮겼다. ‘위키드’의 재기발랄함은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다. ‘공공의 적’이자 악당이었던 ‘서쪽의 초록 마녀’(엘파바)가 알고 보면 정의로운 소녀였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녀 글린다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허영 가득한 소녀였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두 마녀가 친구가 되는 과정, 지금의 삶에 이르게 된 이유를 지상 최대의 ‘쇼’로 풀어낸다.

화려하고 거대한 무대가 ‘위키드’가 입은 외피라면, 그 이면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옥주현은 “‘위키드’는 표면적으로는 환상 속 동화 같지만, 안에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라며 “한국인이라면 꼭 한국어로 관람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주현은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탐구를 거듭했다. 그는 “살아가다 보면 선(善)을 알려줄 수 있는 존재들이 드물게 있는데, ‘위키드’에선 딜라몬드 교수가 그런 역할”이라고 했다. 말을 하는 동물 교수는 인간과 동물 간의 ‘종 차별’을 보여주는 대상이자, 불합리와 부조리에 맞서 옳은 말을 하는 존재이며, 다양성의 상징이다. “‘위키드’에는 옳음과 선함을 알려주는 존재가 말을 잃고, 정치적 암투로 인해 몰살된다는 무거운 메시지가 담겼다”며 “너무나 당연하고 옳다고 생각한 그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게 되고, 선택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하게 되는 작품”이라는 것이 옥주현의 설명이다.

엘파바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날 때부터 ‘천덕꾸러기’였던 사람. 꿋꿋하고 의연한 엘파바는 정의를 구현하는 사도다. 엘파바와 글린다, 그리고 엘파바를 ‘다른 눈으로 보는’ 피에르의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변화를 이끈다. 진실이 거세된 시대에 진실을 찾고, 불의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엘파바를 당당히 서게 하고,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힘을” 주며, 세상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일상의 빈번한 차별 앞에서도 반짝이는 본질을 찾게 해준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