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재판부’라는 말을 여당 국회의원이 서슴없이 내뱉는다.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군부독재 시절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최근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 선고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효력을 잠정 중단한 법원 결정에 대한 비판이다. 특정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자 판사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것은 물론 법관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도 40만명을 넘어섰다.
정 교수는 입시 비리와 차명 사모펀드 투자라는, 지극히 사익을 추구한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복귀 결정은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었고, 본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법원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거꾸로 물어보자. 검찰총장과 법원 판사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서 선출된 권력인 의회와 대통령의 말을 들어야 한다면, 구속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출되지 않았던가.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은 과연 투표로 뽑았던가.
법치주의는 권력자가 법을 만들고, ‘우리는 선출된 권력이니 너희는 우리가 정한 대로 따르라’는 게 아니다. 법치주의는 막강한 국가 권력을 쪼개고,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통치를 하라는 원리를 말한다. 대통령은 임금이 아니다. ‘일개 재판부가’라는 표현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말로, 문명국가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발언이다.
여당에서는 ‘사법 쿠데타’라는 표현도 쓴다. 쿠데타는 군사력을 동원해 정권을 찬탈하는 것을 말하는데, 법원이 칼이나 총을 들고 판결을 한 것인가. 아쉽게도, 법원 판사들은 흔히 ‘법봉’으로 일컬어지는 나무망치조차 실제로는 들고 있지 않다. 쿠데타를 체제 전복행위를 통칭하는 것으로 확대하더라도, 법원이 아니라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여당 의원들의 언사 쪽이 더 가깝다.
‘적폐청산’을 내걸고 검찰에 무한한 힘을 실어주던 여권은 이제 검찰청 폐지론까지 들고나왔다. 하지만 헌법은 검찰총장 직위를 못 박고 있고, 영장청구는 검사가 신청하고 법원이 발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을 없애버리는 게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단순히 판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시스템을 망가뜨리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더 위험하다. 부디 신임 공수처장은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말을 곧이듣지 말고 여권과 무관한 사건에만 힘을 쏟아 화를 면하길 바란다.
여권은 설득을 생략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 법치주의에 따른 절차는 망가져도 상관없고, 반대하는 의견은 모두 반개혁세력으로 매도한다. 적대감으로 내부를 결집시킨다. 스스로를 선출된 권력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마치 혁명정부처럼 일한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지, ‘조국 수호’나 ‘윤석열 파면’을 외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적 정당성은 촛불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얻은 표에서 나온다. 혁명정부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선출된 정부는 헌법에서 정한 권력분립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법원은 해마다 ‘법원의 날’을 기념하고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린다. 엄혹했던 시기에 일선 재판부를 비난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억울하면 항소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오만한 대법원장이 아니라, 진정한 법치주의자였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