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세정 기자] “마스크도 경쟁이 사라지면서 가격이 내렸는데 주파수 가격은 왜 그대로죠?”
5조5000억원. 이 정도면 ‘주파수 재할당’이 아니라 ‘주파수 폭탄’이다. 주파수 재할당 대가로 정부가 통신사들에 요구하는 금액이다. 그야말로 통신사들이 ‘봉’이다. 부족한 세수를 주파수 재할당으로 메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주파수 재할당에 대한 통신업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놓고 4조원가량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요구대로 통신사들이 5조5000억원의 금액을 부담한다면 통신시장이 극심한 침체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 위축뿐 아니라 결국 고객들의 통신요금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5일 과기정통부가 주파수 재할당과 관련된 마지막 연구반 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막판까지 큰 진통이 예상된다.
▶조 단위 금액 제멋대로 산정=현재 통신 3사가 2G, 3G, 4G에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은 총 410㎒다. 이 중 주파수 재할당 대역폭은 SK텔레콤 95㎒, KT 95㎒, LG유플러스 120㎒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이용 기간이 종료되는 이 주파수 대역을 기존 통신사에 그대로 재할당하기로 했다.
문제는 재할당 대가(가격)다. 원칙적으로 재할당 가격은 통신사가 주파수를 통해 얻는 예상 매출액의 3%로 산정한다. 예상 매출액 규모는 과기정통부가 임의로 결정한다. 과기정통부는 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애초 4조원대로 추산했으나 기획재정부와 협의 이후 이를 5조5000억원까지 올렸다. 조 단위의 금액을 제멋대로 산정한 셈이다.
반면 통신사가 판단한 주파수 재할당 대가는 1조6000억원 수준이다. 4조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업계와 정부의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요도 없는 재계약… 월세 인상한 격!”=재할당 대가 산정 기준을 놓고 갈등의 핵심은 ‘과거 경매가’ 반영 여부다. 신규 주파수 경쟁이 아닌 기존 주파수 사용을 ‘연장’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과거 경매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업계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수요도 없는 집의 월세를 인상한 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통신 3사도 공동문을 통해 “경쟁적 수요 없이 재할당하는 상황에서 경쟁적 수요가 가장 많이 반영된 과거 경매 대가를 100%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과거 경매 낙찰가는 사업자의 경쟁 가치, 신규 서비스 수익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했지만 재할당은 이용자 보호가 목적이라 경쟁 가치, 투자 효과 등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할당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가 과거 경매 때보다 하락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과거 주파수가 부족했던 시기와 주파수가 지속 공급된 현시점의 경제적 가치는 다른 것”이라며 “경쟁 수요가 사라진 지금 경제적 가치가 당연히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 후 마스크 가격 변화를 예로 들었다. 업계는 “초반에는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급등했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증가해 초기와는 완전히 다른 가격”이라며 “주파수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주파수 경제가치 하락의 근거로 들었다.
업계는 “2012년 850억원이었던 ㎒당 매출은 2014년 730억원, 2017년 588억원으로 하락해 2019년에는 328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차라리 경매해라”…업계 강수= 통신사들은 주파수 현재 시장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전체 사업자 주파수에 대해 사업자 간 경매를 실시하자”는 강수를 띄웠다. 주파수 ‘연장’ 대신 차라리 경매로 시장에서 주파수 가치를 다시 평가하자는 것이다.
업계는 “정부의 재할당 대가 산정 방식이 사업자가 평가하는 주파수 가치와 큰 격차를 보인다면 시장 가치를 반영하려는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다”며 “정부의 현재 방식으로 재할당 대가가 결정될 경우 사업자는 주파수 재할당, 신규 주파수 확보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기존 경매와 같이 관련 규정에 의거한 최저경쟁가격을 산정하고 경매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요청한다”며 “정부와 사업자의 부담이 모두 큰 만큼 시장에서 가치를 다시 결정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5일 재할당 관련 연구반의 마지막 회의에 이어 이달 말 공청회를 열고 주파수 재할당 대가 관련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