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 이후 취재단 질문에 답하는 이건희(가운데) 회장과 권남근 부장(맨 왼쪽).
2007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 이후 취재단 질문에 답하는 이건희(가운데) 회장과 권남근 부장(맨 왼쪽).

이제는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과는 지난 2005년부터 약 4년간 삼성그룹 출입기자로서 몇 번 뵌 적이 있다. 취재차 현장에서의 주로 짧은 만남이었지만 늘 긴 여운을 남겼다. 이 회장 특유의 침묵과 이후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으로 던지는 메시지의 파장은 항상 컸다. 사회와 기업, 국가에 던지는 ‘촌철살인’같은 한 마디가 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의 ‘인사이트(통찰력)’가 담긴 발언은 1993년 신경영 때 언급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발언처럼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좌표를 가리키는 메시지와 같았다.

2007년 1월 2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이 회장과 당시 삼성그룹 출입기자단 풀(Pool)기자로서 몇 가지 질문을 할 기회가 있었다(사진). 마침 그해는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년 소감에 관한 질문에 차분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

“(삼성이) 커져서 좋기는 한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참 고생을 많이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게 우리 한반도(한국)입니다. (내가) 창조경영을 말한 것도 이 같은 의미입니다.”

삼성이 커졌지만 모방자로서 선진기업과 선진국을 따라가기 만해서는 더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였다. 삼성뿐만 아니라 제조강국인 중국과 기술강국인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같은 한국의 운명까지 함께 담은 말이었다. 전경련 회장단회의 이후 나온 이 발언은 사실상 재계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돌아봐도 이 회장이 언급한 국내 현실과 세계적 정세는 소름 끼칠 만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회장은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언제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냐”는 물음에는 “자격이 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기초는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래의 삼성을 위해 아들인 이 전무를 조금더 단단하게 키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아버지(이병철 회장)가 그랬듯이 허투루 회사를 물려주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2006년 2월 발목 부상으로 일본에서 귀국한 이후 이 회장은 사실 외부 활동을 자제해왔었다. 하지만 그해 4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에 참석하며 대외 행보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현대차 수사로 반기업 정서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 재계 어른 자격으로 한 마디해달라는 물음에 이 회장은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이를 다음해 전경련 회장단회의에서 답한 것이다.

이 회장은 ‘기업은 어떻게 급변하는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왔다. 이 때문에 늘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조직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으로 현안을 파악하면서도 미래를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뛰어난 전문경영인이 즐비한 삼성이었지만, 사실상 그 역할을 해준 사람은 ‘이건희 회장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휴대전화 등 세계1위 삼성 제품이 그냥 툭 튀어 나온 게 아니다. 냉철한 현실파악과 창조적 비전, 과감한 실행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러한 것들이 ‘창조와 혁신’의 이름으로 응축된 삼성의 20년 신경영이었고 결국 ‘이건희 회장’ 그 자체였다. 그 20년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의 성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이가 이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하루빨리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길 바랐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길 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안팎으로 어수선한 이 시점에 영면에 들어간 이건희 회장의 부재가 삼성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안타까운 건 이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권남근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