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 불리한 조건변경
은행들에 자율조정 주문해
유사조건 의견조율 불가피
법상 예외조건요건 미충족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축소 유도 방안이 오히려 불법행위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용대출을 줄이기 위해 은행간 경쟁을 제한하고 한도와 금리를 소비자에 불리하게 하려는 시도가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한 담합을 종용한 행위일 수 있어서다.
은행들은 오는 25일까지 신용대출 총량 축소 방안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각 은행들은 상품별 로 한도를 줄이고 우대금리를 낮추거나 없애는 등의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은행간 조건이 같거나 비슷해야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만큼 각 은행 실무자들 사이에 의견도 교류되는 모양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모여서 신용대출 축소 방안을 논의하지는 않지만 실무자들 사이에 서로 어떻게 방안을 마련 중인지 정보를 교환하고 타행이 어떤 안을 내놓을지 살피며 각자의 안을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 방침에 따라 5대 은행이 신용대출 한도와 금리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담합)’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은행 입장에서 정부의 행정지도에 의한 것이고, 단순 정보교환 차원이라고 반론할 수 있지만, 5대 은행이 마련한 방안이 대동소이할 경우 담합을 의심할 수 있다. 반대로 5대 은행의 방안이 각각 차이가 나더라도 시장점유율 등의 은행별 상황에 따라 사전에 서로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를 도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5대 은행의 신용대출 한도와 금리 조정이 담합이 안 되려면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거나 민관 공식적인 회의를 통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단순히 은행별 자체적으로 안을 마련하라는 것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규제산업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부당한 공동행위를 정부가 조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정거래법 제19조 1항은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면서, 2항에서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산업합리화, 연구·기술개발, 불황극복, 산업구조조정, 거래조건 합리화,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등의 목적인 때다. 하지만 예외조항 적용을 위해서는 공정위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감당국은 여전히 은행 자율일 뿐이며 신용대출 금리에 대한 인위적인 조정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 “은행들이 금리를 높인다고 하는데 우대금리를 손대는 것 외에 실질적으로 금리를 높이는 방법이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권은 이미 총량규제에 대비해 신용대출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17일 기준 5대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의 신용대출 잔액은 126조899억원으로, 전날보다 2436억원 줄어들었다. 11일(125조1973억원)부터 16일(126조3335억원)까지 1조원 넘게 늘었던 것이 하루 사이 급감했다. 5대 은행은 이번 달 실행액부터 연말까지 매월 신용대출 현황을 금감원에 보고해야 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5대 은행이 동시에 줄어든 것으로 봐서는 신용대출 취급 관련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승환·박준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