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다. 매일 아침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기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코로나가 어디서 확산될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경제분야에서 이러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가 외환시장이다. 사실 외환시장은 코로나뿐 아니라 경제적, 지정학적 위기 등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반응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절 8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2000원까지 치솟는 아찔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1년 IMF 체제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나라 경제는 유례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한 단계 성장하는 값진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정부는 환율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마련채권)를 외화로 조달하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외화 유동성 확보와 환율 안정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지난 8월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약 4189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주 정부에서 외평채를 역대 최저금리 수준으로 발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10년 만기 미국 달러화 표시채권 6억2500만달러의 발행금리는 1.198%이고, 5년 만기 유로화 표시채권 7억유로의 발행금리는 -0.059%로 모두 역대 최저 수준이다. 특히 유로화 채권은 비유럽국가 유로화 표시 국채 가운데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채권으로 발행되었다. 이번 외평채 발행에 몰린 높은 투자수요를 통해 우리는 해외투자자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높은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 하락폭이 가장 낮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투자심리와 한국의 코로나 대응 성과에 대한 우호적 평가 등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이번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우리나라의 환율 안정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과 높은 무역의존도를 감안할 때, 국내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환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낮은 금리의 외평채 발행은 공기업에는 원화 환산 외화차입금 규모 축소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 민간기업에는 환리스크 감소를 통한 안정적 영업환경 조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외평채 발행금리는 한국 기업들이 발행하는 외화채권의 벤치마크 역할도 겸하고 있어, 이번 초저금리 외평채 발행은 향후 국책은행이나 공기업, 민간기업들의 해외 차입비용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예로 작년 성공적인 외평채 발행 직후 진행된 한국전력의 그린본드 발행에는 약 6배의 투자수요가 몰리며 역대 공기업 그린본드 중 최저금리를 기록했었다. 금번 외평채 발행금리가 시중 유통금리 대비 약 10bp(0.1%) 이상 낮았던 것을 볼 때, 향후 국책은행과 공기업, 민간부문의 연평균 해외채권 발행금리도 역시 유의미하게 낮아져 이자비용 절감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백후조(松柏後彫)라는 말이 있다. 날씨가 추워져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사철 푸르른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이번 외평채가 코로나 확산과 미중 무역갈등으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발행된 만큼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과 기업 경영환경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최성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