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기본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은 모든 이념이나 시대를 떠나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근본과 같은 것이다. 동양의 고전인 논어에도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기본이 서면 길이 생긴다(君子本務 本立而道生)’는 말이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이런 말들이 요즘처럼 가슴에 와 닿는 때가 없는 듯하다. 공부에 있어 진짜 교재는 책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고 언론에서는 세상을 코로나 이후와 이전을 구분할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치료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놀랍게도 한 장에 몇 천원 하는 마스크와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매우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방역 수칙이다.
마스크를 잘 쓰는 국가에서는 발병률이 낮고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는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마스크와 손씻기 때문에 감기나 독감 같은 다른 질병이 확연히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감기나 독감이 걸리면 병원에 가고 처방을 받지만 진짜 예방약은 마스크와 손씻기였던 것이다. 잊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낸 셈이다.
우리는 시장경제라는 경제 시스템 아래서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근본을 지키기 위해 독점력을 남용하는 행위를 규제하기도 하고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고 처벌하는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거래 현장에서 이러한 불공정행위들이 왜 빈발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계약이란 거래 당사자 간 약속을 의미한다. Pacta sunt servand!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격언이다. 그런데 만약 그 계약 내용이나 거래 내용이 정확하고 투명하지 않거나 그냥 말로만 해놓으면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라는 60년대 영화 제목처럼 말이다. 대강이라도 약속한 내용이 잘 이행되면 본전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힘센 기업이 그 힘을 남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 기업도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거래 현장에서는 많은 거래가 계약서 없이 또는 부실한 계약서로 인해 발생하고 몇 억원, 수십 억원하는 계약도 대충 구두로 이뤄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변경계약은 사후 정산으로 대체된다. 왜 계약서를 제대로 안 쓰느냐고 기업들에 물어보면 대부분의 대답이 어떻게 수시로 바뀌는 수많은 계약을 다 서면으로 쓰느냐 하거나 업종의 성격을 얘기한다.
아울러 을의 입장에서는 갑에게 계약을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오히려 필자보고 거래 현실을 잘 모른다고 반문한다. 이해가 충분히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정확한 계약을 하는 문화와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해도 안 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계약 어느 일방당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를 위한 것이다. 거래당사자 간에는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할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도 불공정거래행위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줄여 행정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에 마스크와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본 방역수칙이듯이 계약서를 상세하게 잘 쓰는 것은 불공정거래행위를 예방하는 파수꾼이다.
정부에서 여러 분야의 표준계약서를 보급하고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고 기업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유치해 보이지만 ‘계약서 잘 쓰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것 같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거래관계에서 기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신동권 공정거래조정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