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인정시 재판 증거’ 규정 담은 형소법 시행 당겨질 듯
검찰은 “n번방 사건 등 조직적 범죄 규명 힘들어질 것” 부정적 의견
법조계, 제도 방향 자체엔 공감 취지…“실무상 부담 불가피”
조국 사건 등 기존 진행중이던 주요재판에 영향 미칠 수도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재판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한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시기가 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규정이 시행되면 형사재판에서 법정공방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재판 자체가 길어질 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 과정도 대폭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지난 4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관하는 ‘국민을 위한 수사권 개혁 후속추진단’ 회의에서, 대법원이 “개정된 형사소송법의 나머지 규정이 시행될 때 이 조항을 같이 시행해도 실무상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낸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법원 의견대로라면 늦어도 내년 2월 이전에 검찰 단계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채택 관행이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는 당사자가 검찰 수사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점만 확인되면 증거로 쓸 수 있었다.
규정이 시행되면 그 이후 접수된 사건부터 적용할 것인지, 기존에 진행 중이던 사건에도 적용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법률이 개정되는 경우 종전 규정과 새 규정 사이 적용관계 등 조치를 담은 ‘경과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기존 진행 중이던 재판에도 적용할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주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2가지 안을 두고 어떤 입장을 택하고 의견을 낼지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 재판에 참여하는 일선의 판사와 변호사들은 대체로 제도 방향 자체에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재판이 기존보다 충실해지면서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고, 피고인 및 피의자의 실질적인 방어권이 보호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형사 재판의 장기화 등 실무상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부담도 적지 않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에서 조사했던 내용을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고 재판에서 다툴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재판이 길어지게 될 것이란 점”이라며 “언론에 등장하는 몇 가지 주요 사건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의 형사사건도 장기화될 것이어서 염려가 없진 않다”고 말했다. 형사사건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앞으론 재판이 시작된 후에 사건을 재구성하자면서 검찰과 피고인 사이에 본격적인 공방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성범죄, 뇌물, 화이트칼라 범죄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공판에서의 입증이 더 중요해지는 만큼 수사를 맡은 검사들이 공판에 직접 참여하는 부담이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임채웅 변호사는 “복잡한 사건, 증인이 많이 필요한 사건은 웬만하면 불구속으로 재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변호사 입장에서는 사건당 투입되어야 할 노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번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으나, 다른 점은 그대로이면서 이 변화를 적절히 감내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1심 구속 재판의 경우 구속시한은 6개월이다. 통상 구속 만기 전에 선고하기 때문에 구속 재판에 비해 불구속 재판이 더 오래 걸린다.
수사 주체이자 형사재판의 당사자로 제도 변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검찰은 우려를 나타낸다. 검찰 관계자는 “n번방 사건 같은 조직 범죄, 조직적 경제범죄 등 다수가 관여하는 범죄의 경우 피의자 신문을 통해 상호 공모 관계를 규명하게 된다”며 “제도 보완없이 시행하는 경우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에 심각한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