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한국건설산업硏 부연구위원
공공 주도 도시재생사업 등 현실적인 한계
민간 정비사업과 윈-윈 구도로 가야 바람직
공급 측면도 좋은 입지에 신속한 공급 장점
유동성 활용 新금융기법 도입 사업활성화를

“현 정부 들어, ‘나쁜 정비사업’과 ‘착한 도시재생’이란 이분법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민간이 추진하는 정비사업은 역사와 문화를 파괴하고 투기꾼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여기고, 도시재생사업은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민주시민이 선호하는 정의로운 방식이라는 인식입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 부연구위원(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헤럴드 부동산포럼 2020’ 두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서 먼저 정비사업에 대한 오해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선진국에선 보존형 사회적 재생을 한다”는 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인식이라고 했다. 영국의 사례를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산업화가 일어난 런던은 노동자 주택을 대량으로 지었지만 극심한 주택 노후화로 인해 슬럼화가 심해졌다”며 “1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 148만 가구가 철거되는 등 도시를 다시 만들었고, 예전에 지어진 주택은 정말 소수만 박물관에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 전면철거식 정비사업은 영국 사례처럼 선진국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이러한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분명히 필요한 경우에는 추진되고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부연구위원은 “지금도 일부 지역 주민들이 기존 도시재생 사업에 반발해 다시 정비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도시정비사업과 관련 ‘조합원 배만 불리는 이기적인 사업’이라고 보는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이 위원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공공기여 명목으로 민간은 상당한 양의 기반시설과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고, 일정 이상 수익이 발생하면 그마저도 최대 50%까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통해 환수되는 등 공공에 기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민간주도 정비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과연 기성시가지의 기반시설 확보와 물리적 환경 개선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정비사업은 공공과 민간이 ‘윈윈’하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주택 공급 측면에서도 시장이 원하는 입지에 좋은 품질의 주택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한 핵심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꼽았다.
강남과 여의도를 비롯해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에서 강 건너 불 보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사업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원칙 있고 예측 가능하며 효율적인 인·허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은 “가재울 뉴타운 5구역 사례를 보면 지자체장의 의지가 높을 경우 12개월 만에도 사업 추진이 가능했다”며 구체적인 인·허가 제도 개선 방향으로 ▷비효율적 심의 절차 간소화 ▷사업에 대한 이해도 높은 심의위원 구성 ▷부당한 이유로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는 입법 추진 등을 제안했다.
정비업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용적률 체계 개편과 관련, 그는 “서울시 기준 정비구역 지정과 동시에 40%의 용적률을 감하고, 공공기여시에만 추가 용적률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상황”이라며 “일단 깎고 시작하는 이런 체계가 과연 정당한 지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인하 등 최근 늘어난 유동성을 정비사업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는 신금융기법 도입도 제안했다. 그는 “지금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수요를 차단하는 쪽으로만 정책이 작동하고 있다”며 “유동성을 통해 도시환경·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이를 적정 인구에 분배 또는 배당할 수 있는 형식의 금융상품을 만들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양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