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요즘 장르드라마에서는 로맨스를 잘 넣지 않는다. 극중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게 자칫 장르물의 깊이나 흐름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극중인물들이 사랑을 할때, 극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남궁민과 박은빈은 러브라인 형성 없이 장르물로서 호평받았다.
하지만 장르물에서 멜로를 하면 안된다는 법칙은 없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학드라마지만, 멜로 풍년이다. 병원에서 치료도 하고 연애도 하는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이’(2007)나 ‘뉴하트’(2008) 정도에서 이미 제대로 소비됐다.
그럼에도 ‘슬의생’은 연애물과 장르물을 병립시켜도 문제가 없다. 과히 멜로잔치라 할만한 ‘슬의생’의 러브라인을 한번 보자.
14일 방송에서 숨어서 지켜보던 민하(안은진)가 드디어 석형(김대명)에게 고백해, 이들 러브라인도 본격화됐다. 그 때 ‘아싸’ 석형의 나른하고 건조한 표정을 보면, 이들의 ‘로코’가 오히려 기대된다.
익준(조정석)-송화(전미도)도 정리가 돼간다. 치홍(김준한)이 송화를 좋아하지만, 송화는 수락하지 않은 가운데, 익준이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라는 송화의 질문에, “이렇게 너랑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거. 난 나한테 그거 해줘”라고 말해 과거 한번 엇갈렸던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원(유연석)-겨울(신현빈)도 정원이 신부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애써 겨울의 교제 제의를 뿌리치지만, 둘 사이에서 매파 역할을 하는 익준의 노력으로 ‘윈터가든’(겨울-정원)도 상한가를 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준완(정경호)-익순(곽선영) 관계는 익순이 박사과정을 위해 영국으로 가게 됐지만, 또 익순 오빠인 익준이 이들 사이를 모르고 있는 게 장애용인이긴 하지만, 멜로의 완성은 반드시 결혼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새로운 사랑법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멜로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벅찰 정도다. 하지만 ‘슬의생’은 의학드라마로서의 깊이와 감성을 충분히 담고 있다. 사랑 이야기를 풀어도 장르물로서 손상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슬의생’이 인간에 대한 차분하고도 진지한 관찰,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가감없는 진솔한 모습, 거기서부터 인물의 매력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휴머니즘이라 할 수도 있다. 의사건, 검사건, 야구선수건, 야구 구단직원이건 사랑도 삶의 일부분이다.
익준이 송화에게 멜로의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익준은 열이 나는 아들 우주(김준)를 송화에게 맡기고 병원 근무를 하러 갔다. 송화는 새벽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열 내리는 방법을 물어,우주 옷을 벗기고 찬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는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당직근무후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이 모습을 본 익준은 송화를 위해 누룽지를 끓인다. 비가 온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그대 고운 내사랑 오월의 햇살 같은 꿈이여/그댈 기다리며 보내는 밤은 왜 이리 더딘 건지(중략)/그대를 쉬게 하고 싶어 내 귀한 사람아’라고 부르는 어반자카파의 리메이크송 ‘그대 고운 내사랑’이 흘러나온다.
이건 장르물, 로맨스물 이전에 우리의 삶을 잘 보여줘 공감가게 한다.이렇게 인물들간의 감정선을 잘 연결해 시청자로 하여금 계속 보게 만든다.
바람 피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석형모(문희경)가 남편 석형부(남명렬)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와 수술을 받자, “이혼은 없는 걸로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 등 병원 종사자들인 극중인물들이 사랑을 해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