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인의 코로나 감염은 흔한 경우다. 우주복 같은 전신 방호복을 입지 않은 이상 어떤 마스크도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감염자 곁에 있으면 누구든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발열 체크를 해도 감염자 중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무발열 증세는 잡아낼 수가 없다. 아직까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운이 좋게도 감염자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스크의 안과 밖으로 꼭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것은 아니다. 마스크의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죽자고 마스크를 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의심과 증오의 눈길이 쏟아진다. 비감염자들의 획일적인 마스크 착용은 자신을 제외한 상대방 모두가 감염자라는 잠재적 신념을 형성한다. 나만 감염자가 아니고 나머지 모두가 감염자로 추정되는 이상 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식당과 영화관, 상점도 어디 한군데 안전한 곳은 없다. 텅텅 빌 수밖에 없다. 내남할 것 없이 모두가 무인도에 갇힌 셈이다.

마스크는 마땅히 감염자와 감염 추정자, 의료인이 써야 하고, 그들을 접촉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써야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상식은 무너졌다. 온 국민이 누구나 마스크를 쓴 모습은 낯설고 기괴하다.

텅 빈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햇빛 따뜻한 야외나 한적한 산에서도 마스크를 쓴다. 그렇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 103개 국가에서 한국 발 입국인 혹은 한국인을 입국제한 하거나 금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도 부재하고 감염 여부를 검사할 마음도 없는 나라들이 ‘한국 발 혹은 한국인 입국 금지’를 최상의 코로나 대책으로 채택했다.

코로나19의 사망률이 역대 어느 바이러스보다 낮은 비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촌은 한마음이다. 한국만 조심하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다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있고, 거짓된 정책은 자국민의 환영을 받고 있다. 어떤 외국인들은 코로나를 꼬로나로 부르며 한국을 코로나19의 숙주국가로 지목하면서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정부는 “투명하고 신속한 전면대응이 무슨 죄냐? 입금금지를 풀어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103개 국가는 요지부동이고, 한국을 기피하는 나라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KDI는 한국경제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고, 글로벌 투자은행(IB) 노무라는 한국경제 성장률 제로를 추정했다.

두 달을 넘게 버텨 온 한국경제는 이제 누구나 피부로 느낄 만큼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약한 알바생과 계약제 사원이 해고되기 시작했고, 곧 이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을 판국이다. 이대로 두어 달만 가면 국가경제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공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겠지만 그들조차 국민경제가 무너지면 감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절반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페스트 사태 때 사람들은 세균에게 감염되어 죽기보다는 굶어 죽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임진왜란 때는 전사자 18만 명에 비해 아사자는 1백만 명을 헤아렸다. 6.25 전쟁 때 역시 200만의 국민이 아사했다.

바이러스 대책을 생존 전쟁에 비유한다면 마스크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이다. 코로나 대책을 효율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비교적 안전한 곳이나 야외에서는 마스크 쓰기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홍보하고, 무분별한 감염검사와 격리조치는 중지해야 한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힘을 내야 한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식당과 상점을 찾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힘차게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국민이 내수경제를 살리지 않으면 코로나 대책도 실패한다.

돈이 떨어지고 해고되고 파산하면 누구든지 마스크조차 살 수 없고 밥도 굶어야 하며 병원치료도 받을 수 없다. 코로나 감염자도 방치될 수밖에 없다. 이미 대한민국은 경제와 외교의 자멸 감을 맛보고 있다. 지구촌에서 고립되었고,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멸절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자. 내 동료와 이웃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우리 모두 의병처럼 일어나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 국민이 힘을 내야 한다. 시간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