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카이로=함영훈 기자] 카이로 공항에 근접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외곽지역 베드타운은 김포공항에 가까워지면서 볼 수 있는 분당 처럼, 아파트지역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카이로시 외곽 아파트촌 도시계획은 나름의 예술작품을 염두에 둔 듯 둥글기도 하고 나사모양을 띠기도 하며 인위적으로 녹지와 산책로를 두려는 의지가 역력하다. 1991년 신군부의 200만호 건설이 마구잡이로 이뤄져 안타깝다는 생각이 카이로 상공을 날면서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집트의 젖줄 나일강 범람의 흔적은 강줄기 어디서든 발견된다. 물길이 있었을 만한 지역이 거미줄 처럼 뻗어 있다. 카이로 근교에서도 과거에 물이 흘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작은 골짜기들을 무수히 볼수 있다. 만약 아스완에 댐을 만들지 않았다면 나일강은 대동맥 좌우에 숱한 실핏줄 같은 것들이 붙어 있는 모습이리라. 수자원 관리 능력만 갖췄다면 상당한 영토의 사막화를 막았을지도 모른다.
나일강이 흘러흘러 카이로에 이르면, 강변 풍경은 럭셔리, 프리시티지, 랜드마크 집결지, 혹은 썸남썸녀 데이트, 강변 낭만, 가족 소풍 등으로 바뀐다. 강변 산책로에서 토라진 여친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소년의 모습도 눈에 띈다. 나일강과 카이로 타워, 강변 호텔과 선상디너레스토랑 등이 만들어내는 야경도 화려하다.
서울의 한강 복판에 여의도가 있듯, 카이로 나일강 복판에는 게지라섬이 있다. 이곳엔 뉴욕 맨하튼처럼 부유층과 지도층이 이용하는 시설이 많다. 대규모 스포츠클럽, 글로벌 브랜드의 유명호텔, 오페라 하우스, 은행, 나이트클럽, 공립도서관, 할리데이비슨 대리점, 사립학교, 외국어학교, 대사관저, 귀금속 상점, 골프장, 승마클럽, 종합병원, 현대미술관 등이 밀집돼 있다.
게지라섬의 빅3는 왕궁에서 호텔로 바뀐 카이로 메리어트 & 오마르 카이얌, 스포츠클럽, 오페라하우스이다.
카이로 메리어트 호텔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왕의 방문을 앞두고 지어진 130년 된 궁전을 그대로 계승해 현대식을 약간 가미한 곳이라, 여전히 고풍스럽다.
지어질 당시에는 2000여개 방과 동물원, 무도회장, 연회장이 있었는데, 호텔로 개조했어도 내부 골격과 무도회장, 연회장은 여전히 남아있다. 궁주로 추정되는 우아한 여인과 19세기식 정장을 한 최고 귀족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중세 프랑스 루이왕궁의 느낌도 준다.
연회장 한켠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된 최초의 시계가 130년간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워낙 독특한 면모 때문에 단골 손님이 많다.
이 호텔 리어들에 따르면, 올해 91세인 고객은 40년간 틈날 때 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소파는 귀족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단장했고, 귀족의 구두를 닦던 건물 한 켠의 구두닦이집은 여전히 영업중이다.
궁의 방은 19세기 벽화가 그려지고, 오리엔탈 카페트가 깔린 카페로 변신했다. 식당은 넓은 홀 구조가 아니라, 이 방, 저 방에 음식을 마련해두고, 손님은 뷔페 접시를 들고 제3의 방을 통과해 내 방의 내 자리에 착석하는 식이다. 궁의 작은 방들을 그대로 둔채 여러 방을 묶어 식당으로 살짝 바꾼 것이다.
외관은 온통 금으로 장식했다. 화려한 금장 처마와 기둥 근처에서 투숙객들은 귀족이 된 듯 커피를 마신다. 특색있는 식당의 상호는 사람 이나 지역 이름이다. 과거 이 왕궁의 숙수,수랏간 나인이거나 그 사람들의 출신지가 아닌가 싶다. 매우 인상적인 이 호텔에서 또 인상적인 것은 왕궁 같은 이 호텔의 숙박료가 우리나라 4성급 이하 호텔 가격이라는 점이다. 거품 없는 카이로 경제의 한 단면이다.
해가 지면서 게지라 섬 쪽 석양을 등지고 동쪽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을 지나 칸 엘-칼릴리 시장(Khan el- Khalili Market)에 가면, 카이로의 색다른 역동성을 느낀다.
가락시장은 새벽 경매사의 외침에서, 남대문시장은 대낮 상인들의 4~5개 언어 호객 소리에서 흥이 느껴지는데, 구색의 다양성이 이스탄불 그랜드바자르와 비슷한 카이로 칸엘 칼릴리 시장은 지구촌 남녀노소가 시끌벅적한 골목길 분위기를 함께 만들고 있었다. 오히려 상인들이 더 점잖은 표정이다.
귀금속, 가방, 가죽, 향수, 수공예품, 장난감, 골동품에서 부터 파피루스 기념품, 조명, 스카프, 피라미드 모형, 잡화, 명품짝퉁, 여인들의 이너웨어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는 이집트의 만물상이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복 대여하는 가게가 있듯이, 이곳에는 과거 이곳을 지배한 왕실의 공주가 입던 곳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이집트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집마흐푸즈가 즐겨 찾았던 카페엔 모두들 한번 들러보려고 바글바글하다.
거대한 성채가 시장을 호위하고, 골목길 곳곳에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아 이게 과연 시장과 어울리는 환경인가 싶기도 하지만, 의문은 곧 풀린다.
잘 생긴 샤리프 가이드에 따르면, 1382년 카이로 시내 동쪽 이슬람 지구에 개설된 이 장터는 본래 카이로에서 무역을 하는 국내외 큰 상인들의 호텔촌이었다. 나라에 경제적 이득을 주는 상인들을 극진히 모시기 위해 맘루크 왕조 술탄이던 바르쿠크(Al Zahir Sayf Barquq)의 아들 알-칼릴리(Al Khalili) 왕자가 호텔촌 건립을 주도했다. 칸 엘 칼릴리 할때 칸(khan)은 아랍어로 근사한 숙박시설을 뜻한다.
보석, 향료, 비단 등 진귀한 물건을 거래하는, 돈 많은 사람들이 근사한 중세 호텔에서 묵으면, 당연히 음식점과 토산품점들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나아가 카이로 사람이든 관광객이든 한번쯤 꼭 들르는 시장이 되고 물건의 구색도 점차 다양화한 것이다.
전성기때엔 1만2000개 상점이 있었는데, 이스탄불이 무역거점으로 크면서 지금 칸엘칼릴리 시장의 점포는 1500개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장골목에서 아이는 뛰고, 이집트 공주옷을 입은 동서양인들은 재잘거리며, 여행자는 물건값을 흥정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칼릴리 시장 외곽은 카이로에서 이름난 모스크들이 호위한다. 남북으로는 알-아즈하르 모스크에서 부터 알-하킴 모스크 까지 약 1㎞ 거리이다.
1시간이면 느린 걸음으로 일별할 수 있지만 찬찬히 보고 흥정까지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흥정의 고저 차가 동남아 보다는 크지 않지만, 그래도 처음엔 세게 불러본뒤 눈빛을 확인하면서 밀당하는 것은 이집트도 예외없고 동서고금 다 같다. 고가 차도에서 밤시장 풍경을 내려다 보면 온갖 지구촌 인종들이 소통하며 ‘바글바글’ 장관을 이룬다.〈계속〉
○‘新이집트 탐방기 글 싣는 순서’ ▶2월11일자 ①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②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③소년왕 투탕카멘 무덤방은 장난감房 ④에드푸의 반전매력, 에스나 물살 제어기술 ⑤나일강물 맛 보면, 나일로 꼭 온다 ▶2월18일자 ⑥제정일치 룩소르, 신전은 王와 神의 토크라운지 ⑦3500년전 모습 왕가의 계곡…멤논 울음 미스터리 ⑧권력 탐한 모정, 너무 나간 아들 ‘핫-투’ 갈등 ▶2월25일자 ⑨석공의 눈물 밴 미완성 오벨리스크 ⑩호텔이 된 왕궁, 시장이 된 옛호텔 ▶3월3일자 ⑪아스완-아부심벨, 곳간에서 문명 난다 ⑫필래와 콤옴보 문명 덧쓰기, 없애기 ▶3월10일자 ⑬찬란한 박물관, 개발중인 도시, 두 풍경 ⑭신비의 사막 탐험, 홍해 레저 반전매력 ⑮미사포야? 히잡이야? 문명은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