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세계적 디자이너 파비오 노벰브레…AC밀란·포르쉐·피아트 등과 협업…한국서 자신의 이름 딴 주거공간 ‘빌리브 파비오 더 까사’ 디자인
이탈리아 남부에서 태어난 소년은 광장에서 뛰어놀기를 즐겼다. 광장 중앙에 자리한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바로크 성당을 보며, 그저 웃으며 공놀이를 했다. 광장은 도시의 거실이었다. 비어있기 때문에 누구나 모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
그 때부터 였을까.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파비오 노벰브레의 디자인 세계는 광장처럼 열려있다. 과감하고 경계가 없다. 그는 밀라노의 축구팀 AC 밀란의 본사 까사 밀란을 디자인한 건축 디자이너이자, 포르쉐 피아트 등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와 협업한 자동차 디자이너이고,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13일 내한한 그를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만났다.
▶나의 집은, 열려있다=파비오는 최근 신세계건설과 손을 잡고 서울 주거공간 디자인에 처음으로 참
여했다. 이번에 그가 디자인에 참여하고 그의 이름을 단, ‘빌리브 파비오 더 까사’는 밀라노 스타일의 주거 디자인을 지향한다.
파비오는 “이탈리아인과 달리 한국인들은 일을 굉장히 많이, 오래, 열정적으로 한다”면서 “나는 그들에게 집에서 보내는 따뜻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딸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이른바 ‘딸바보’다. 인터뷰 내내 삶의 공간에서 딸과 함께 지내는 자신을 빗대 설명했다. 때문에 일을 많이 하는 한국아빠와 엄마를 위한 공간으로 주방 디자인에 힘을 썼다.
파비오는 “이번에 디자인한 곳은 모두 소형인데, 주방을 거실과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언제든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며 가족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며 “어릴적 이탈리아의 주방에서 어머님이 요리를 하고 그 곁에서 머물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파트란 용어를 싫어했다. 영어로 아파트(apart)가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파트먼트’란 말을 주거 공간에 붙이기 싫다고 했다. 파비오는 열린 공간을 좋아한다고 내내 강조했다.
“나는 심지어 문도 싫어한다”며 웃었다. 문을 싫어해서, 문 디자인 의뢰를 받고 손잡이를 하트 모양으로 디자인한 적도 있다. 도어의 이름은 ‘사랑은 문을 연다(Love opens doors)’다.
▶ ‘가면 의자’에 앉으면, 진실을 이야기한다=파비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니모(Nemo) 체어’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를 이탈리아 대표 디자이너로 자리잡게 한 이 의자는 인터뷰 자리에 빨간색과 하얀색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얼굴 의자’는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면을 주면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말에서 착안했다. 파비오는 “가면 모양의 안락 의자에 앉아 진실을 말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신체 일부를 디자인에 활용한 것은, 그가 바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파비오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 지나가는 사람의 숨소리, 눈빛 등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기 때문에 디자인은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종교에서 신을 형상화할 때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듯이, 인간의 모습 그 자체가 자연이자 완벽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니모 안락의자에는 눈이 없다. 반짝이는 눈빛을 구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파비오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밝혔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주변 환경을 새로 만들고 다듬는 것을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디자이너는 혼란 속 질서를 넣어줘야= ‘어린 시절부터 꿈이 디자이너였냐’는 물음에는 ‘노(no)’라고 답했다. 그저 뛰어놀다보니 호기심이 많았다. 오늘날 그의 디자인 원동력이다.
자연스레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지만, 보고 자란 것은 광장의 화려한 바로크 양식 성당이었기 때문에, 밀라노에서 건축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빼는 게 더 많은 것(less is more)’이었다.
그래서 파비오의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화려하다. 그가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스튜어트 와이츠먼’ 플래그십스토어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유대계 미국인인 구두 디자이너 스튜어트 와이츠먼이 원한 것은 단 하나, 벽에 신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이었다. 그는 빼다박은 디자인이 싫었다. 그래서 모든 요소를 빼고 단 하나 선반으로만 매장을 꾸미기로 했다. 선반의 형태가 직선일 필요는 없었다. 선반은 리본처럼 구부러지며 온 매장에 둘러졌다. 하나의 선으로 벽면에선 선반이, 천장에선 조명이, 그리고 바닥에선 쇼파가 됐다.
파비오는 “디자이너는 혼란 속 질서를 넣는 사람”이라며 “틀을 깨는 미친 생각이 좋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디자인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측 불허의 것이 많다. 2001년 디자인한 식탁은 네 개의 식탁 다리 외에 말랑말랑한 167개 다리가 있어 어릴 적 식탁 밑에서, 놀이하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가 돼 식탁 밑을 기어다니며 놀면, 정글탐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파비오는 늘 자신을 ‘현재의 디자이너’라고 밝힌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를 사는 것이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현재이자 선물을 뜻하는 ‘present’란 단어를 좋아한다고도 전했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현재 시대의 형상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유행이 아닌 시대정신을 반영한 한정된 시간 속에서 선물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밝혔다.
▶원칙 어기지 않는다면, 무조건 ‘예스맨’=파비오 노벰브레의 디자인은 색이 과감하다. 그는 좋아하는 색도 꼽지 않았다. 모든 색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는 두 딸의 이름을 ‘베르데’와 ‘첼리스데’로 지었다. 각각 녹색과 하늘색을 뜻한다.
파비오는 “베르데는 나의 땅이고, 첼레스데는 하늘이다. 만약 아이가 셋이었다면 ‘로소’ (붉은색)로 지었을 것이다. 붉은 색은 피가 흐르는 우리 인간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예스맨’이라 밝혔다. 원하는 것을 할 뿐 ‘성공’이란 단어에도 거부감이 있다고 전했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한 적은 없다. 서울에서의 주거공간 디자인 제안도 당연히 답은 ‘예스’ 였다.
15년 전부터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지난해에도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파비오는 “종종 한국 사람 스스로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과소평가한다”면서 “한국은 긍정적 에너지가 많고 반짝반짝 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하나를 꼽아달라는 요청에는 답을 거절했다. 작품은 자식과 같아서 하나를 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특유의 긍정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나의 모든 작품을 좋아한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성연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