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수단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부동산 공시가격제도 취재 과정에서 자문을 해준 한 전문가는 정부의 올해 공시가격 인상 과정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당초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겠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국민 여론과 학계 모두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지만, 정부가 잘못된 방식으로 현실화를 추구하면서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그는 “논란을 너무 많이 겪다보니 이제는 목적의 정당성마저 의심받는 지경”이라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공시가격 현실화는 시민사회에서 줄기차게 요구돼 온 것이 지난해 국토교통분야 관행혁신위원회에서 개선하라는 권고안으로 반영돼 추진이 시작됐다. 부동산 유형별로, 지역별로 시세 반영 비율이 너무 다르다 보니 공적 가격 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세금 역시 불공평하게 매겨져왔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었다.

공시가격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해까지는 실제 시세가 얼마 오르건 대체로 일률적인 상승률을 적용해왔다. ‘왜 옆집은 조금만 올랐는데 우리집은 많이 올랐냐’는 식의 민원을 피하려다보니 생긴 일이다. 이것이 매년 누적돼오다 보니 시세 반영률 격차가 가만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됐다. 올해 공시가 인상을 두고 ‘들쭉날쭉 상승률’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시세에 맞게 다른 상승률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목적인 셈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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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는 공시가격 바로잡기의 원년이 되는 올해 추진 과정에서 ‘들쭉날쭉’을 엉뚱한 방향으로 적용하면서 논란을 키우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시세 상승률을 조작없이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의미에서의 ‘들쭉날쭉’이 아니라, 고가 주택이나 토지는 많이 올리고 일반 주택은 적게 올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전국 기준으로 봤을 때 고가 주택이 밀집해 있는 서울이 실제 시세 상승률보다도 높은 공시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곧장 공시가격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올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세금은 법률을 개정해 내리거나 올릴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를 거치지 않고 손쉽게 증세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고가 부동산 위주로 타깃이 된 점을 들어 부동산 경기 조절 수단으로 공시가격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전국 수백만 토지와 주택의 가격을 매기는 터라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한두건 사소한 오류에도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신뢰성에 타격이 되는 이유는 정부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공시가격을 흔들고 있다는 의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조작하지 않겠다면서 다른 방식으로 조작을 한 결과, 국민의 신뢰를 높이겠다던 당초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논란을 더 키워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이의신청이 접수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시가격 산정 기준과 근거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아 국민들의 답답함만 커질 뿐이다.

문제는 정부가 공시가격 인상과 관련한 어떠한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아 내년, 내후년에도 이같은 논란이 사그라들것같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로 고가 부동산의 현실화는 마무리가 된 것인지, 내년부터 중저가 부동산의 현실화가 시작되는 것인지 명확치 않다. 아울러 그렇다면 이들 부동산 보유자의 세금이 오르는 것인지, 오른다면 어떤 속도로 오르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정부는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공시가격 산정에 오류가 있다고 트집잡아 한국감정원을 감사하려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앞장서서 주장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감사 청구로 스스로가 감사 대상이 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지난달 말까지 공동주택, 단독주택, 토지 등에 대한 공시가격 결정ㆍ공시가 이뤄졌다. 시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 보유세 계산이 한창이다. ‘보유세는 곧 주거비’라는 점에서 부쩍 오른 세부담에 시장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불만은 공시가격과 그에 바탕한 세금이 여전히 불공정하게 매겨져 있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시가격 책정의 기준과 로드맵을 밝혀 조세 저항을 다독여야 한다.


paq@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