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하나가 파산을 하면 큰 회사는 채권자만 수천 명입니다. 환자 본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존엄사와 달리 법인파산은 주변 사람 마음을 정리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파산관재인 업무를 11년째 맡고 있는 임창기(54ㆍ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는 스스로를 ‘채권자들의 대변인’이라고 소개한다. 파산 선고를 받은 법인의 재산은 파산재단으로 묶인다. 파산관재인은 법원이 기존 법인의 대표자를 대신해 이 파산재단을 처분할 권리를 갖도록 임명한 사람이다. 서울회생법원에는 임 변호사를 비롯해 34명의 법인 파산관재인이 등록돼 있다.
임 변호사는 회사가 망하고 나면 투자자 등 채권자들이 ‘울화가 치민다’고 전했다. 어떤 이는 머리를 굴려서 회사에서 자기 몫을 찾아가는데, ‘그것도 못하는 나는 뭐냐’고 자책하는 채권자도 있다. “파산 선고 한 두 달 뒤에 법원에서 채권자 집회를 열어요. 그때 제가 이 회사는 재산이 뭐가 남아있고, 얼마만큼이 현금으로 회수될 것 같은지를 공개적으로 보고합니다. 그럼 사람들이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내가 손해 보는 일은 없겠구나’라고 불안감을 떨치게 되는 거죠.” 또 법원이 포괄적금지명령을 내리면 채권자들은 함부로 회사 재산을 가져갈 수 없게 된다.
공정성과 함께 속도도 중요하다. 그는 “파산회사 수백 개 재산을 합치면 수백억인데, 손을 안대면 수백억이 썩는 것”이라며 “파산관재인은 신속하게 ‘환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꾸 돈을 수집해 불려야 채권자에 나눠줄 돈이 많아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환가는 공개매각(공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요즘 가장 인기있는 것은 자동차다. 자동차가 공매 대상으로 나오면 중고차 업자 대여섯 곳에서 꾸준히 입찰하러 온다고 한다. 요즘엔 현물 뿐만 아니라 상표권 같은 지적 재산권도 꽤 값이 나가는 편이다.
요즘 임 변호사는 더욱 바빠졌다. 관재인 숫자는 한정돼 있는데, 파산 사건 수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만 해도 19건을 맡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건수는 400건에 이른다. 올해는 4월까지만 163개 회사가 파산했다. “2008년 경기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옛날엔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사업 자체가 안돼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호사 시장도 좋지 않아 파산관재인 인기는 날로 더해간다. 경쟁이 치열해 이력서 내는 수준이 아니라 관련 경험과 왜 파산관재인이 되고 싶은지를 ‘자기소개서’ 수준으로 써야 한다고 한다. 관재인 임기는 2년 단위로 갱신된다. 또 꾸준히 업무성실도와 환가 실적 등으로 법원에서 평정을 받는다.
“제일 처음에 분당 주상복합아파트 건설 시행사 사건을 맡았어요. 1,2층 상가 미분양 30개인가 있었고, 처음에 25억에 매수요청이 왔는데 제가 올리면서 40억가량에 팔았습니다. 일괄로 단기간에 매각을 하자 당시 판사님이 부르더니 ‘변호사님 협상을 잘 하시는 거 같다’고 칭찬했어요. 그 다음부터 계속 사건을 받은 거죠.” 웃음과 함께 옛 일을 회상한 임 변호사는 파산관재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소통을 꼽았다. 임 변호사는 “민원인, 채권자들이 불안감에 전화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뭘 할 거다, 이런 것을 객관적으로 공개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 직원들에게도 얘기를 최대한 상세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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