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위·동순위 상속권자 살해땐 국내민법 “상속권 불인정” 조항 대법판례 “낙태도 상속권자 살해” 새 판례 세우는데 최소 3~4년 당분간은 모순상황 지속 불가피
헌법재판소가 임신 초기 낙태를 처벌하는 게 위헌이라고 선언하면서 향후 여성의 상속 지분을 인정하는 문제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현행 민법과 판례상으로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낙태를 한 임신부는 상속권을 상실한다.
18일 헌법재판소의 형법 제269조 1항 등 위헌소원 사건 결정문을 보면 ‘결정가능기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점을 임신 22주부터로 잡고, 이 시점 이전에는 국가가 입법을 통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조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결정은 형법 조문에 대한 것이어서, 낙태를 어디까지 ‘처벌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그친다. 형사처벌과 별개인 민법상으로는 여전히 낙태를 한 임신부가 상속상 불이익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민법 1004조는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상속권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상속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문이다.
문제는 민법 1000조에서는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면서 생긴다. 임신부가 남편과 사별한 경우, 남편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게 아니라 태아와 절반씩 나눠갖게 된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낙태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형사처벌 여부와 상속권 박탈 사이에 간극이 없었다. 하지만 임신초기 낙태가 헌법상 정당한 것으로 결정이 난 상황에서 임신부가 상속상 불이익을 입어야 한다면 헌재 결정 이후 모순이 생기는 셈이다.
대법원은 1992년 판례 이후 민법상 상속권을 박탈하는 ‘살해’에 낙태가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1989년 A씨는 남편이 죽은 후 뱃속 태아를 낳아 혼자 키울 엄두가 나지 않자 낙태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낙태는 동순위상속자를 살해한 것과 같다’며 ‘살해의 고의가 있다면 상속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임채웅(55ㆍ연수원17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낙태한 임산부가 상속권을 잃지 않으려면 1992년의 이 대법원 판례가 바뀌는 수 밖에 없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기존 판례를 폐기하고 새 판례를 세우는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에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은 법 조항으로 인해 불이익을 입고 있는 당사자가 바로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상속문제로 인해 민사소송을 내 법정에서 ‘정당한 낙태’가 민법상 금지되는 ‘상속인 살해’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야 논의가 시작된다. 판결이 선고된 후에도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 와야 하고, 사건을 맡은 대법관들이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는 최소 3~4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국회에 2020년 12월31일까지 입법을 하라고 결정했다. 향후 수년간은 ‘형법상 처벌되지 않지만, 낙태를 하면 상속권을 잃는다’는 모순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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