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제약사들은 세일즈로 기업 덩치 키우는 구상을 가끔 하다가도, 신약 개발에 다시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대형화’의 기회를 쥐었다 놓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돈 잘 버는 상품 보다는 국민 고질 병을 고칠 약을 먼저 개발해보려는 약업건민(藥業健民)의 소명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약사의 보수적인 확대재생산 과정은 애틋한 구석이 있다. 다른 산업이 흔히 구사하는 페이스리프트(face-lift)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제약엔 없다.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는데 성공한 글로벌 제약사가 주요 질환 치료제를 선점한 가운데, 토종기업들도 당뇨, 간, 위장관ㆍ소화기계 질환 등 분야에서 후발신약의 강한 효능으로 세를 넓히는 상황이다.
▶B형간염 면역 글로불린 헤파빅-진 상용화 초읽기= 스트레스 많고 의무적 술자리가 적지 않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B형간염은 멍에 처럼 달고 사는 것으로 인식된다. 체념으로 위험성을 잊는 것이야 말로 위험천만하다. 만성 B형 간염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3억명에 달하고, 이들 중 상태가 악화돼 간경변 내지 간암으로 발전해 연간 78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토종 바이오신약의 개발이 코앞에 다가왔다. GC녹십자는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 ‘GC1102’(헤파빅-진)이 상용화를 위한 최종 임상 단계인 2/3상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이 약물은 그 동안 GC녹십자가 혈우병치료제, 헌터증후군 치료제 등을 개발하면서 축적해온 세계적 수준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작용을 하는 단백질 성분으로 혈액(혈장)에서 분리 정제해 의약품으로 만들어진다. GC녹십자의 ‘헤파빅’이 국산 대표 제품으로, 통상 이 약물은 간이식 환자의 B형 간염 재발을 예방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적용된 성공 사례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에 가장 근접해 있는 ‘헤파빅-진’이 의약계에서 큰 관심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헤파빅-진’은 기존 혈장유래 제품보다 항체의 순도가 높고 바이러스 억제 능력도 뛰어나 약물 투여시간을 기존 제품의 1/60 수준까지 줄여줄 수 있다.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유럽의약국(EM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 받기도 했다.
기존 제품의 원료인 특수 혈장의 한정적 수입 문제가 없어지기 때문에 제품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처가 가능해진다. 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한 제조 비용 절감으로도 이어져 환자의 약값 부담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이상지질혈증 환자의 새 희망 ‘프랄런트’= 고혈압, 당뇨와 함께 3대 심뇌혈관계질환 위험인자인 이상지질혈증은 모든 직장인들이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보고 탄식하는 대표적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표준요법인 스타틴으로 치료를 시작하지만 심근경색 등을 겪었거나 유전적 요인 등으로 유독 콜레스테롤 조절이 어려운 환자군에겐 치료에 한계가 있다.
이처럼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를 위해 스타틴 국내 허가(1990년) 이후 20여년 만에 PCSK9 억제제 계열의 이상지질혈증 신약이 새롭게 등장했다. PCSK9 억제제는 국내에서 2017년 1월 최초로 허가된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의 ‘프랄런트(성분명: 알리로쿠맙)’ 등 총 2가지 약제가 허가돼 있으며<사진:사노피 연구진>, 현재 국내외 이상지질혈증 치료지침에서는 최대 내약 용량의 스타틴으로 충분히 치료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의 치료를 위해 권고되고 있다.
광범위한 글로벌 임상연구를 통해 최대 내약 용량의 스타틴으로 충분히 LDL-콜레스테롤이 조절되지 않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과 이종접합 가족형 고콜레스테롤혈증(HeFH) 환자에게 병용 투여했을 때 위약군 대비 충분한 LDL-콜레스테롤 감소 효과를 입증한 바 있다.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프랄런트’의 ODYSSEY KT 한국인 대상 하위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8년 9월 대한내과학회 영문학회지 온라인 출판) 최대 내약 용량의 스타틴 요법으로도 충분히 LDL-콜레스테롤이 조절되지 않는 한국인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의 약 92%가 치료목표에 도달한 바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토종 항궤양제 신약 막바지 임상= 강력한 위산분비 억제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차세대 항궤양제 후보약물 DWP14012(대웅제약)는 지난해 초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의 지원과제로 선정돼 그해말 임상3상에 돌입했다.
DWP14012는 ‘가역적 억제’ 기전을 갖는 위산펌프길항제로,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PPI(proton pump inhibitors, PPIs) 기반의 위산분비저해제를 대체할 차세대 약물로 기대 받고 있다. DWP14012는 임상 2상 시험에서 점막손상에 대한 치료율이 PPI 대비 비열등임을 확인했다. 특히 PPI들과 달리 초기 7일 이내에 빠른 증상 개선 효과를 발휘했고, 간독성 등의 부작용 우려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대웅제약측은 설명했다.
이 약물은 경쟁약물 대비 우수한 위산분비 억제효과 및 항궤양 효과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목할만한 차세대 약물이 없는 항궤양제 시장에서 ‘블록버스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2월 국내 임상 1상을 완료하였고, 같은 해 6월 임상2상을 진행했다. 지난해 말 임상3상에 진입한 이 항궤양제 후보물질은 2020년 국내 허가를 목표로 막바지 정밀 효능확인작업이 진행중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전세계 여러 파트너사와 논의를 진행 중이며, 미국 임상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항궤양제 시장은 2021년 400억달러(4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