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글로벌경제 하강국면 진입 수출 주도형 성장 마감 ‘경제 큰 고비’ ‘양질의 저성장’으로 연착륙 이끌어야 성장 가로막는 규제 완전철폐 원칙 바이오·AI 등 4차산업으로 구조조정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길 터줘야 투자 늘어야 고용 늘고 임금도 상승 노사관계 개혁 없이는 경제발전 요원 노조 6개월 정도의 탄력근로제 수용을 소득주도 성장, 기업 기살리기 함께 가야 저성장 유일한 돌파구는 남북한 경제협력 새해 집값은 하락안정 유지에 무게 둬야
박승(82) 전 한국은행 총재는 새해가 2%대 장기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우리 경제에 큰 고비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수요 쪽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기(氣)를 살려주는 공급 쪽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제성장을 막는 규제는 모두 철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바이오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으로의 산업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새해 경제상황을 지난해보다 어려울 것으로 봤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해온 경기 상승세가 하강국면으로 꺾일 것이고, 국내적으로는 수출 침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다만 새해는 남북 경제협력의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아 경협이 제대로 된다면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좌우를 넘나드는 대표적인 한국 경제 원로다. 지난달 20일 평창동 자택 인근에서 진행된 2시간 가량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대한 매서운 통찰력으로 막힘없는 혜안을 제시했다.
- 새해 한국 경제의 국내외 환경 어떻게 보나 ▶작년보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선진국의 금리인상과 양적완화 종료에 따른 긴축기조가 유지될 것이고, 미중 무역분쟁 등 보호주의 기조가 강화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지난해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수출이 새해에는 반도체 경기 하강으로 잘 해야 현상유지 수준이 될 것이다. 투자 감소 현상, 저출산 노령화 심화 등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다만 새해에 기대되는 하나의 호재는 바로 남북경협이다. 내년은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 한국 경제 2%대 저성장 고착화되나.▶한국 경제는 2%대 성장이 정상적인 성장이 되는 그런 단계에 들어섰다. 잠재성장률도 2%대 후반 수준이다.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4~5%를 2%대로 끌어내린 결정적인 이유는 그동안 두 자릿수로 늘었던 수출 증가율이 2008년 이후 평균 제로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수출이 성장을 주도할 만큼 증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향후 관건은 고용이 개선되고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는 ‘양질의 저성장’으로 연착륙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2%대, 일본은 1%대 성장을 하고 있지만 고용은 양호하고 양극화 문제도 심각하지 않다.
- 일본형 장기불황 우려도 나온다.▶한국은 일본과 같은 불황으로 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일본은 1985년 선진국과 ‘플라자 합의’로 대미환율을 달러당 260엔에서 120엔으로 반토막 냈다. 이때 수출주도 성장이 끝나고 경제성장률이 6%대에서 2%로 주저앉았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제로로 내리고 재정팽창 정책으로 돈을 마구 뿌려 자산거품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주가와 부동산이 폭등한 이유다. 이후 1991년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에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을 가져왔다. 실제 1992~2001년 10년간 일본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0.9%였다. 한국의 2%대 성장은 저성장이지만 불황은 아니다. 다만 일본과 같이 되지 않도록 경제관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제조업의 위축이 심각하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이 꺾이면서 제조업 성장도 꺾이게 됐다. 지난 6년간(2011~2017년) 평균 제조업 성장률은 2.7%에 그쳐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2.9%를 밑돌았다. 또 매년 제조업에서 고용이 10만명 내외가 감소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제조업은 이제 성장을 견인하기는커녕 뒤에서 따라가는 산업이 됐다는 뜻이다. 앞으로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바이오 인공지능(AI)과 같은 4차 산업과 금융, 의료, 교육서비스, 레저와 같은 소득이 늘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이른바 ‘고소득수요형’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창출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시장경제에서 고용과 임금상승을 결정하는 것은 투자다.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어야 임금이 오른다. 지금 큰 문제는 우리나라 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일자리가 넘치는데 한국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본은 작년 2분기 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17% 증가할 때 국내 투자도 17%늘었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상장기업 영업이익이 7% 늘었는데 국내 투자는 오히려 28% 감소했다. 현금유보액만 205조원이 쌓였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근본적인 차이다. 국내 투자가 늘어나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 투자가 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가. 투자증대 방법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투자해도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국내 시장이 좁다. 한국 시장은 일본의 3분의 1, 중국의 8분의 1, 미국의 13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국내 시장의 고비용 구조다. 임금, 집값, 교육비가 모두 비싸다. 이러한 내수시장 규모나 고비용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장기적인 과제이다. 단기적인 해결법은 규제혁파와 노사관계 개선이다. 이는 당장 우리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면 가능한 일이다.
- 노동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나.▶우리나라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이 국가 전체로는 140개국 중 15번째인데 노사관계는 140개국 중 124번째 최하위에 해당한다. 노사관계 개혁은 대단히 절박하다. 우리나라 노조는 대기업의 고임금ㆍ정규직이 중심이 돼 기득권이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 노조가 국가 이익이나 노조도 없는 90%의 다른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기득권을 가진 조합원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현 정부는 친 노동 정부라고 하는데 노조는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끝없는 기득권 욕구 관철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 복지를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노동계는 기득권을 양보하고 신규 고용을 늘리기 위해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 광주형 일자리, 탄력근로제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광주형 일자리는 현재 평균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 자동차공장에서 초봉 3500만원, 주 44시간 일하는 자동차공장을 광주에 세우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돕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년 일자리 1만5000개가 나오게 되고 코너에 몰려있는 자동차산업에 새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노조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시간단축은 꼭 해야 한다. 우리나라 근로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동시에 기업 생산에 피해를 적게 주도록 상생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6개월 정도의 탄력근로제는 노동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수출 대신 내수를 확대해 성장을 뒷받침하고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인데 이는 매우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지금 당면한 ‘저성장ㆍ고실업ㆍ양극화’의 3중고는 수출주도의 성장엔진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생기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단기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소득주도 성장이 이런 문제에 당장 성과를 못냈다고 해서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작년 3ㆍ4분기 저소득층 소득이 오히려 감소해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많았는데 내용을 따져보면 이때 정부로부터 받은 이전소득은 20% 이상 증가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아니었다면 저소득층 소득은 더 악화했을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정책효과가 나올 때까지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다만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보완이 꼭 필요하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수요 쪽 정책이다.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생산과 공급 쪽 정책이 같이 가야 성공할 수 있다.
- 규제개혁이 필요함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개혁의 속도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규제개혁 없이는 투자증대도 불가능하고 혁신성장도 불가능하다. 경제 활력을 살리려면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규제는 철폐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다만 규제철폐에 따라 피해보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피해계층과 함께 협의해 별도의 보상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원격의료와 승차공유제는 국민 편익과 국가발전, 경제발전에 필요한 제도이고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제도다.
- ‘남북경협이 한국이 가진 하나 남은 도약 기회’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한국이 장기 저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남북 경제협력이다. 한국 경제의 침체 이유는 투자수요 부족과 생산가능 인구 감소인데, 남북 경협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의 자원과 인력,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하면 북한은 연 8% 이상, 남한은 5% 이상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부동산 정책 어떻게 보나.▶새해 집값은 떨어질 것으로 본다. 그렇더라도 부양책을 써서는 안된다. 집값은 약간 떨어지는 상태로 둬야 한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실수요가 아니라 투기수요 때문이다. 3기 신도시 개발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 본다. 올해부터 우리나라도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인데 이렇게 지어가는 변두리 신도시는 어느 땐가는 공동화가 될 수 있다. 현재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다. 1988년 신도시를 세울 당시 서울 주택 보급률 56%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 투기수요를 제거하면 신도시 대신 도심 재개발 재건축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정리=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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