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만 인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금융위원회도 인력이 없습니다.”

지난 11월말 열린 국제회계기준(IFRS) 관련 한 세미나에서 산적한 이슈를 논하는 동안 난데없이 ‘금융당국의 인력이 너무 적다’는 푸념 섞인 발언이 오갔다. 금융위 관계자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한종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회계와 관련된 인적 자원이 너무 부족하다”며 “투입되는 인적 자원이 이렇게 적은 구조이다보니,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도 터진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금융당국만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게 아니다. 실제 감사 업무를 준비하는 상장사도 난감해하긴 마찬가지다.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한 상장사 관계자는 기자를 만날 때마다 “우리 회사는 실질적으로 회계팀 인원이 1명”이라며 “IFRS가 ‘연결’이다, ‘공정가치’다 해서 복잡하기만 한데, 사람도 없으니 몇개월간 밤새우지 않고선 감사일정을 맞추기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업계에선 IFRS의 모토인 ‘원칙중심 회계’라는 말이 ‘뜬그름’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국내 회계 기준은 크게 ‘원칙 중심의 IFRS’와 ‘규정 중심의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으로 구별되는데, IFRS를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상장사들 입장에선 ‘아리송’한 점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학자들은 K-GAAP과 같은 ‘규정중심 회계’가 “올바른 회계처리는 1개이다”라는 뜻이라면, IFRS와 같은 ‘원칙중심 회계’는 “올바른 회계 처리는 2개 이상 가능하다”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원칙 중심 회계가 ‘2개 이상 복수정답’을 허용한 것은, 그만큼 제각각인 기업들의 경영방식을 최대한 인정해주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이 ‘복수 정답’ 허용이 기업들에겐 ‘답 없음’ 처럼 느껴진다는 게 문제다. 모 대기업 재무 회계 실무자는 이런 말을 한다. “IFRS 도입 8년을 되돌아보면 ‘연결’도 ‘공정가치’ 적용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는 게 실무 입장에서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다. 지난 9월 금융당국이 내놓은 바이오제약 지침 같은 게 차라리 실무 입장에선 훨씬 편한 겁니다.”

정부의 입김이 센 한국에선, 답이 없는 회계 처리가 기업들에게 오히려 경영 ‘리스크(위험)’로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답을 찾는 실무자들은 ‘질의회신’이라도 속시원히 보길 원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질의회신이란 기업들이 회계기준원에 특정 문제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문의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받아내는 것이다. IFRS 도입 전만 해도 특정 회사의 질의회신 내용이 다른 기업들에게도 공개됐다. 다른 회사들도 참고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던 것이 IFRS 도입 이후엔 공개되지 않는다. 세세한 ‘규정’이 아닌 더 큰 ‘원칙’에 근거한 질의회신이다보니, 세부적으로 상황이 다른 기업들 입장에선 오히려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회계 담당자들은 ‘정답’을 원하지만, 정답을 제시하면 오히려 ‘원칙중심 회계’를 부정하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IFRS를 포기하면 안 되는 걸까. 흥미로운 점은 ‘IFRS를 자국에 도입하지 않고 있는 미국’이 IFRS 기구에는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IFRS 전체 기구에 진출한 4개 국가 중 한 곳이기까지 하다.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유럽 선진기업들이 IFRS를 채택했단 점을, 미국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자본시장 역시 해외 선진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IFRS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IFRS를 포기할 수 없다면, 이를 개선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방안은 ‘더 많은 소통’이다. 기업은 사후 감리 두려움을 떨쳐내고 회사에 어떤 회계 문제가 있는지를 먼저 밝히고, 금융당국은 기업을 사후적으로 처벌하기 보다 사전적으로 문제를 같이 대화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소통 내용은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런데 기업이 먼저 문제를 밝히려고 해도, 금융당국이 사전적으로 대화를 하려고 해도, 결국 답 없는 회계기준을 이해할 인력과 자원이 수반돼야 한다. 더 많은 회계 컨설팅과 협회 차원의 대화 채널뿐 아니라 공시를 위한 다양한 비용도 감내해야 한다. ‘소통’ 문제는 실상 처음에 언급한 ‘회계 인력’ 문제이자, ‘회계를 위한 비용 감내’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그리도 첨예했던 IFRS는 다시 우리 사회에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IFRS 논의를 위해, 복수의 답을 찾기 위한 소통을 위해, 얼마나 투자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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