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겨도 과태료 내면 ‘끝’…실효성 없어 -“신고해봤자…” 임시조치 신청도 줄어 -“접근금지 어기면 징역형 등 강력 처벌해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지난 5월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화가 난 A 씨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폭행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현장 상황과 피해자 진술 등을 근거로 긴급임시조치를 취해 A 씨가 아내의 거주지나 직장에 접근하거나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A 씨는 다음날 아내의 직장으로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경찰이 출동했으나 긴급임시조치 위반에 대한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아무런 처벌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저 A 씨를 말로 설득해 분리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전처를 살해한 사건으로 가정폭력 대책 요구가 커지면서 유명무실한 경찰의 임시조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긴급임시조치는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 거주지로부터 퇴거 및 격리 ▷피해자 거주지 또는 직장 등에서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한 접근 금지를 명령하는 제도다. 법원의 결정까지 장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임시조치‘와 달리 긴급임시조치는 출동한 경찰이 결정할 수 있다. 긴급임시조치는 2개월간만 효력이 있고 최대 2번씩 연장해 총 6개월동안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임시조치나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하더라도 이에 대한 처벌이 미약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정폭력특례법상 임시조치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될 뿐이다.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지난 2015년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인 김모(48) 씨에게 긴급임시조치를 취했다. 이후 김 씨는 법원으로부터 임시조치 명령도 받았다. 그러나 김 씨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거처를 알아내 살인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일부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임시조치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오히려 과태료 납부 책임만 자신에게 전가될 것으로 우려해 긴급임시조치나 임시조치를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긴급임시조치나 임시조치는 지난 2015년 8810건에서 지난해 5480건으로 줄었다. 지난해 긴급임시조치나 임시조치를 위반한 사례는 4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조치를 취한 건수가 줄어든 배경에는 임시조치를 취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임시조치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 조항은 피해자에게 ‘신고해봤자 소용없다’는 인식을, 가해자에겐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만 줄 뿐 실효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며 “피해자들을 2차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임시조치 위반에 대해 경찰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지난 3월 접근금지명령 위반자에 대해 단순히 과태료만 부과하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처벌상향 및 유치장 유치 등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국회에 긴급임시조치와 임시조치 위반 시 형사처벌하고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계류 중이다.
해외에서는 가정폭력범에 대한 격리 조치와 처벌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선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를 체포한다. 영국에선 퇴거 조치 등을 어기면 영장 없이도 체포할 수 있다. 호주는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