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 겸 이노비즈협회장 월급 38만원 과장에서 매출 300억 강소기업 이끌기까지 암벽등반 취미 통해 위험 도전…안전중시 경영방식 다져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백혈병. 폐결핵. 위암 어느 것 하나만 찾아와도 공포에 질리고 가세가 흔들린다. 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의 가족은 차례로 이런 병마를 싸워 이겨냈다. 이후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다져졌다. 샐러리맨에서 건실한 기업가로 자리잡은 성 회장을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미군부대 부품 모아 라디오 무전기 만들던 까까머리 중학생=대구 원대동에서 태어난 성 회장은 중학생 시절 어머니 주머니에 손을 댔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생과학’이라는 책이 있었죠. 간단한 라디오 회로도부터 해서 이러저러한 게 있는데 재밌어 보였어요. 고물상을 돌면서 미군부대나 이런 데서 나온 고장난 진공관 무전기, 진공관 라디오를 사 모았죠. 돈? 부모님 호주머니에 살짝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웃음) 허락 없이 갖다 쓴 게 걸려서 아버지한테 얻어터진 적도 있어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통장에 돈 듬뿍 넣어 드리면서 ‘그때 빌린 돈 이제야 갚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네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빌려줄 걸 그랬다’고 하시더군요.”

성 회장은 그렇게 해서 라디오를 뜯고 납땜해 무전기도 만들고, 전축도 만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도사’라는 평을 들으며 부탁을 받고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업과는 멀어졌다. 중학생 시절 60명의 반 친구 중에 성적은 53등. 성 회장 뒤로는 야구부 특기생들만 있었다.

“이러다가는 전파상 주인밖에 안 될 것이라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부터 학업에 매진해 원래부터 좋아하던 전자공학을 살려 대학(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잘나가던 방산업체 연구원에서 8비트 컴퓨터 보고 창업 결심=대학을 졸업한 성 회장는 군 장비 제어시스템을 개발하는 방산업체 연구소에 취업했다. 미국에 다녀온 연구소 동료가 가져온 미국 애플사의 8비트 컴퓨터가 그를 매료시켰다.

성 회장는 “이런 컴퓨터를 당시 20만원 안팎으로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걸 통해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길로 사표를 냈다”고 했다.

처음은 하꼬방 같은 구멍가게였다. 여의도에서 시작해서 ‘여의마이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와 아내, 남동생 등 셋이 꾸려가는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 아침에 컴퓨터 주문 받은거 만들어서 팔고, 업무 전산화 소프트웨어나 연구소에서 필요한 시험장비를 개발하곤 했다.

“전에는 과장으로 38만원씩 월급을 받다가 한달에 700만, 800만원씩 벌었죠. 80년대 초반에 그렇게 벌었으니 지금 가치로 보면 한 10배 된다고 보면 됩니다. 넉달만에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를 살 정도였죠.”

▶갑자기 찾아온 병마, 온가족이 죽음과 사투=호사다마라던가. 한창 돈을 쓸어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던 그때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이듬해 세살배기 첫 아들이 세상을 알기도 전에 백혈병이 찾아왔다. 아파트를 헐값에 팔아야 했다. 아들 치료비로 당시 5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요즘 기준으로 한 5억쯤 될까.

이후 아들의 병은 호전됐으나 이번엔 병간호에 지친 아내가 폐결핵에 걸렸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다. 힘겹게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 다시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성 회장 본인은 위암 선고를 받았다. 창업 직후부터 3년에 걸쳐 몰아닥친 일에 그는 회사 경영에 남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을 겪고 나니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폭풍이 몰아쳐도흔들리지 않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성 회장 돌다리도 두들기듯 내실을 다지며 사업을 키워왔다. 그 결과 회사 부채는 0(영)에 가깝다.

▶IMF 위기를 기회로 “수주받은 것은 무조건 지킨다”=IMF시절 발주처의 위기도 성 회장이 직접 일본에서 구해온 부품으로 막아냈다.

“800원 하던 환율이 1, 2년만에 1800원, 1900원까지 올라갔어요. 10대 그룹 중 반이 부도가 났지. 당시 여의시스템에서 조그마한 컨트롤러를 사가던 회사가 있었는데 제어장치 하나를 개발해 달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이게 외국에서 발주를 받았는데, 핵심부품을 일본에서 사다가 끼워 넣어야 하는 거였죠. IMF 이전 가격으로 맞춰줘야 하는데 환율이 급등해서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개발을 시도했지만 생각한 성능의 80, 90% 정도에 불과했어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해냈을 건데 결국 못했죠.”

“그래서 발주처 사장을 찾아가서 ‘저희가 개발에 실패했습니다’라고 하니 사장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털썩 주저앉더라구요. ‘아이고 이제 망했네’라면서. 여기 입장에서도 핵심부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돈을 들여서 세팅을 해뒀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면 그간 쓴 돈도 날리게 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개발엔 실패했지만, 일본 전국을 수배해서 필요한 제품을 구매해서 선적했습니다. 다음 주면 들어올 겁니다. 우리가 망해도 우리를 믿고 맡겨주신 사장님께는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성 회장 입장에서도 발주처로부터 받은 대금은 이미 제품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상태였다. 개발비에 더해 일본에서 부품을 사오면서 손실을 많이 봤지만 가르침도 얻었다. 이 때 ‘수주된 것은 무조건 지킨다’는 회사 미션이 형성됐다.

경쟁사들이 문을 닫자 여의시스템에는 큰 기회가 됐다. 두터워진 신용도와 탄탄한 재무구조로 여의시스템은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도 수월하게 넘겼다.

▶벼랑 끝에서도 안전하게…‘암벽등반’으로 경영혁신 다져=여의시스템은 산업용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각종 IT장비를 개발하고 제조한다. 경기도 전역에 자리 잡은 경기버스 디지털노선 안내기, 경기버스 내부 디지털행선 안내기 등을 여의시스템에서 만들었다.

서울도시철도 디지털 안내방송 및 광고 시스템과 서울메트로 디지털 안내방송 및 광고 시스템, 인천공항과 제주도 버스 안내 시스템도 여의시스템의 작품이다. 지능형 드라이브스루 키오스크 로봇에 인공지능을 결합해 개발하기도 했다.

무선 주파수 측정 검사 컨트롤러와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모션비전 전용 컨트롤러, 스마트폰의 대용량 O/S 및 유저 바이너리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컨트롤러 등 여러 산업군에 필요한 핵심장비를 생산한다.

이에 필요한 산업용 패널 컴퓨터 케이스 및 산업용 컴퓨터 제어장치 관련 특허증과 디자인등록증,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탄탄한 재무구조와 무차입 경영의 기반이 되는 것들이다.

지난해 매출액 358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200억원을 달성했다. 혁신형 강소기업이면서도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나갈 수 있는 비결이 있지 않을까.

성 회장은 40년째 암벽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어릴적 겁이 많아 누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가야 했던 성 회장은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서보겠다는 생각에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산악부의 문을 두드렸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기업체 사장, 연구소장들과 암벽등반을 가면 우리끼리 농담삼아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몸값이 얼마냐’ (웃음) 조금만 위험하면 안전장치를 건다. 로프를 묶을 때 한번 묶고 반드시 한 번 더 ‘옭매듭’이라는 것을 묶어줘야 한다. 한번 묶은 매듭의 양옆을 묶어줘야 한다. 그런 것처럼 안전사고는 대부분 자기실력을 과신해서, 안전장치 없이 갈 수 있다고 하다가 난다”고 소개했다.

아찔한 절벽 끝에서 한 걸음씩 오르는 암벽등반. 도전을 즐기면서도 안전을 추구하는 성 회장의 경영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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