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통에 탄환자국 30여발, 치열했던 전투현장

-유해 발굴된 고지 일대엔 단풍 수놓아 ‘세월무상’

-인식표엔 ‘박재권’ ‘육군’ 등 정보 또렷이 남아

-국방부 확인 결과 휴전 17일전인 53년 7월10일 전사 [헤럴드경제=국방부 공동취재단 김수한 기자] 휴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27일을 불과 17일 앞둔 날이었다. 고 박재권 이등중사(현재의 병장)가 치열한 고지전에서 스러져갔다. 전사일 1953년 7월10일.

이후 68년간 이곳에 묻혀 있던 2남 3녀중 장남 고 박 이등중사의 유해가 마침내 발견됐다.

올해만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비무장지대(DMZ) 중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시범적으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됐다. JSA 외에 철원 화살머리고지가 시범적으로 선정된 이유는 이 일대에서 6.25 당시 치열한 전투가 전개돼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25일 취재진이 방문한 강원도 철원 DMZ의 화살머리고지 주변 산등성이에는 본격적인 가을을 맞아 고운 빛깔의 단풍이 수를 놓고 있었다. 이곳의 풍경은 불과 68년 전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옥 같은 전투가 펼쳐졌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남북 군사합의서에 따라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와 폭발물 제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10~11월 진행되는 지뢰 및 폭발물 제거 작업은 유해발굴의 사전 작업인 셈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내년 4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남북이 본격적으로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게 된다.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남북유해공동발굴, 조국의 품으로 반드시 돌려보내겠습니다.”

화살머리고지에 다다르자 우리 군 GP(감시초소)에 나란히 걸린 태극기와 유엔기 아래로 이런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이 현장의 역사성을 되새기게 해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전날 이곳에서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2구를 수습했다. DMZ에서 전사자 유해를 수습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임나혁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 반장은 “낙엽 사이에서 발견된 유해는 대퇴골로 추정됐고, 햇볕에 노출되어 백화 현상이 상당히 진행됐다”며 “주변 땅에 두개골, 대퇴골, 골반골, 견각골 등이 묻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뼈가 땅에 묻혀 있어 완전 발굴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오늘은 가장 처음 발견한 대퇴골만 봉환했다”고 말했다.

화살머리고지에서는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사단과 9사단, 미군 2사단, 미군 2사단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와 이에 대항하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지역에는 국군 전사자 200여명과 미군과 프랑스 전사자 100여명의 유해,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 등이 함께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전사자 유해 2구가 수습되면서 앞으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 전사자들의 68년 한을 풀어주는 귀환행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DMZ 전체에는 미수습 국군 전사자 유해가 1만여 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수습된 유해를 흰 종이에 정성껏 싸서 솜이 들어있는 나무상자에 입관했다. 다시 유해를 흰색 종이로 덮고 ‘6.25호국열사지구’라고 쓰인 기를 얹었다. 그 위에 태극기로 관 전체를 감쌌다.

육군 5사단장인 전유광 소장 주관하에 약식제례를 진행했다. 명태포와 사과, 배로 차린 제례상에 술을 따르고 예를 갖췄다. 제례상 양옆으로 도열한 병사 10명은 제례의식이 끝나자 유해를 DMZ 밖으로 옮겼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1일부터 현재까지 전사자들의 유품 1252점을 발견했다. 유품이 발견된 곳에는 붉은색 삼각 깃발을 꽂았다. 깃발에는 검정 펜으로 발견 일시, GPS 위치, 발견 내용 등을 적었다. 유품이 있는 곳에서 유해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대비하는 조치였다.

발견된 유품 중에는 M1 소총 3정, 헬멧 2개, 수통 3개, 탄피 등이 보였다.

한 수통에는 30여 발의 탄환 자국이 남아 당시 이 일대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소총 1자루에는 미처 쏘지 못한 탄환 8발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이날 유해와 함께 발굴된 수통. 여러 발의 탄환 흔적이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대신 이야기해준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날 유해와 함께 발굴된 수통. 여러 발의 탄환 흔적이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대신 이야기해준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학기 단장(육군대령)은 “수통에 30여발 정도의 탄환 자국이 있고, M1 소총에 8발탄이 그대로 있었다”며 “아마 당시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미처 쏴보지도 못한 채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9.19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로 유해 발굴을 준비하던 중에 DMZ 구역에서 첫 번째 유해가 발굴됐다”면서 “이곳에 묻힌 1만여구로 추정되는 유해 중 첫 발굴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가족에게 유해 발굴의 희망을 줬다는 의미도 크다”고 덧붙였다.

차후 유해 발굴 계획과 관련해 이 단장은 “내년 2월 남북 공동으로 유해발굴단을 구성해 4월부터 본격적인 유해 발굴에 돌입한다”면서 “내년 유해 발굴을 위해 오는 11월 31일까지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4월 해빙되면 공동유해발굴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유해 전문조사 발굴단 10여명이 투입되어 있으나, 내년 공동유해발굴이 시작되면 전문조사 발굴단원과 병사 등을 하루에 100여명가량 투입할 예정이다.

유해가 발견되면 육안 감식을 거쳐 GP 인근에 마련한 임시 감식소에서 1차 감식을 진행한다. 이곳에는 10명의 감식 요원이 상주하고 있다. 이어 발굴 기록지 등을 정리한 뒤 서울현충원에 있는 중앙감식소에서 2차 감식을 한다.

감식 결과는 유가족에게서 채취한 유전자(DNA) 감식 등으로 신원확인 작업 때 사용된다. 지난 2007년 중앙감식소가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유해 30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국방부는 전날 발견된 유해에 대해 “2구로 추정되며, 인식표 등 일부 유품과 함께 허벅지뼈와 갈비뼈, 두개골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허벅지뼈는 지표면에서, 갈비뼈와 두개골편은 지표면 아래 약 20㎝ 깊이에서 발견됐다.

유해와 함께 인식표 1개, 대검, 소총탄 등이 발견됐으며 인식표에는 군번과 함께 이름(박재권), 소속(육군) 등이 기재돼 있었다.

국방부가 인식표 정보를 바탕으로 부대 전사자 명부, 매장 및 화장 보고서, 당시 전사(戰史) 등을 확인한 결과 인식표의 주인공은 6.25 전쟁 당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 소속 고 박재권 이등중사(현재의 병장)로 확인됐다.

병적에 따르면, 고 박재권 이등중사는 1931년 10월2일 생으로 1952년 3월21일 입대해 1953년 7월10일 ‘강원 철원 내문면 하덕검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국방부는 ‘철원 내문면 하덕검리’는 현재 화살머리고지의 옛 행정지명이라고 설명했다.

1953년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고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국군 2사단이 참전한 전투로 1953년 6월29~30일, 7월6~11일까지 2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됐다. 고 박 이등중사는 전투 종료 하루 전인 7월10일 전사했다. 또한 이로부터 약 2주여 후인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