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약세속 공정 미세화도 둔화
지난 5년간 이어진 반도체 슈퍼사이클(초장기 호황)에 암운이 감돌고 있다. 반도체 고점 논란이 재점화되는 등 반도체 슈퍼 호황이 동력을 상실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올 4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제품인 D램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반도체가 수출의 20%를 점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위기론이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2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반도체가 포함된 16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서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에 대해 “전례없는 반도체 호황 장기화에 불투명함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이미 약세로 돌아섰다.
24일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의 7월 말 평균 고정거래가격(128Gb 16Gx8 MLC 기준)은 5.27달러로 전월대비 5.89%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만에 처음으로 하락한 것으로, 가격 하락폭은 2015년 12월(-4.66%) 이후 가장 컸다.
낸드와 함께 메모리반도체의 한 축인 D램 역시 공급과잉으로 올 4분기 평균판매가격(ASP)이 3분기보다 1~3%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5~25%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도 올해 D램 시장 규모가 사상 최대인 1034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1015억달러, 2020년 989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D램은 삼성전자(44.9%)와 SK하이닉스(27.9%)가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점하고 있고 있는 주력 시장이다.
가격 뿐만 아니라 공정 미세화가 둔화된 것도 불안 요인이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져 양산 투자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수급 불균형과 부품ㆍ장비업체 등 산업계 전반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D램의 경우 과거 1년에 한번씩 이뤄져던 공정전환이 이제는 1년반~2년씩 소요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30, 40나노급만 하더라도 공정이 한 세대 발전하면 얻을 수 있는 생산성 효과는 50% 이상이었지만 최근에는 20~30% 수준으로 낮아져 과거처럼 빠르게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빅3가 주력하고 있는 미세공정은 20나노에서 10나노급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스템 반도체 절대강자인 인텔은 지난달 14나노 기반에서 10나노로의 차세대 공정전환을 또 한 번 늦췄다.
인텔은 당초 올해 초 10나노 프로세서를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4월 내년 초로 연기한데 이어 7월엔 내년 하반기로 추가 지연시켰다.
업계에서는 선폭을 극한으로 줄이는 공정 미세화가 물리적인 장벽에 부딪혀 완벽한 수율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른바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기술이 2년마다 2배 향상된다는 법칙)’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전환 지연이 양산 투자 시점도 늦춘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4위 반도체 업체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업체인 대만의 TSMC는 최근 올해 설비투자액을 15억달러(1조6800억원) 줄인다고 밝혔다. 당초 120억달러(13조4500억원)에서 13% 줄여 100억~105억달러로 하향조정한 것이다.
TSMC측은 “첨단 제조장비 도입 시기가 늦춰졌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최첨단 제품의 양산 수율을 확보하지 못한 탓으로 보고 있다.
TSMC의 투자계획 수정은 반도체 시장의 바로미터인 주요 장비업체의 실적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연간 매출 기준으로 세계 2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와 램 리서치 주가는 지난 3개월 사이 각각 18.8%, 16.4%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전면전으로 치닫는 미중 무역분쟁도 반도체 업계에 부담을 안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국내기업 반도체 모듈은 오는 9월께 결정나는 3차 관세 품목에 해당돼 이번 관세부과 조치로 한국 기업들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통상전쟁이 장기화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IT제품이 줄어들면 그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하락해 시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천예선 기자/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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