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롱민 교수가 지난 2008년 베트남 의료봉사 현장에서 수술한 어린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있다.
백롱민 교수가 지난 2008년 베트남 의료봉사 현장에서 수술한 어린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있다.

23년간 4000여명 무료인술 펼친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교수 세민얼굴기형돕기회·SK그룹 후원 구순구개열 수술 베트남 국가우호훈장 수훈도

지난 6월27일 늦은 저녁 베트남 남부 푸옌성의 주도인 뚜이호아市의 한 식당.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백롱민 교수(연구부원장)가 이끄는 한국 의료진과 간호사들, 자원봉사 학생들과 푸옌성 지역의 병원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한 여성의 구수한 아리랑 노래가락이 울려퍼졌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를 구성지게 부른 이 여성은 노래를 끝내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 환하게 웃는 것이 평생소원인 어린 제 딸의 구순구개열 수술(언청이 수술)을 오늘 한국의 의사선생님에게 받았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런 기회를 주신 한국의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힐까 고민하다 ‘아리랑’을 열심히 연습했어요. 한명이라도 더 많은 베트남 어린이들의 수술을 위해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 9시가 넘도록 수술 해주신 것에 대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평생 한국 의사선생님들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겟습니다”

지난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베트남 푸옌 종합병원에서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세민얼굴기형돕기회 소속 의료진들의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의료봉사가 진행됐다. SK그룹의 후원으로 1996년부터 무려 23년간 이어진 백 교수의 베트남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웃음’을 되찾은 베트남 어린이의 수는 무려 4000여 명에 이른다.

▶ ‘얼굴이 아닌 마음의 상처를 꿰매다’…두 의사형제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지금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도 얼굴기형 어린이를 위한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는 백 교수가 이끄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얼굴윤곽수술법 개발 등 얼굴기형 성형수술 분야의 신기원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백롱민 교수의 친형인 백세민 박사로부터 시작됐다.

백롱민 교수의 열다섯 살 터울 형인 백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미국 유수 병원에서 성형외과 과장을 역임하는 등 의사로서 한창 전성기를 보내던 상황에 돌연 한국행을 택했다.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발전을 돕고 얼굴기형 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의료봉사’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생소한 분야였던 ‘얼굴기형 치료 봉사’를 하겠다는 그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국내 병원은 없었다. 백 박사는 결국 뜻을 함께하는 소수의 동료·후원자들과 함께 얼굴기형 어린이 전국 무료 순회 진료 사업을 시작했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4600여 명의 환자의 진료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백 박사는 응우옌 푸 빈(Nguyen Phu Binh) 당시 주한 베트남 대사로부터 수술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얼굴기형 베트남 어린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되고 베트남 의료봉사를 결심하게된다. 하지만 백 박사와 지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는 막대한 해외 수술봉사 재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백 박사는 당시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았던 SK그룹에 조심스럽게 지원요청을 했고 당시 SK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손길승 現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이러한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본격적인 후원을 위해 꼭 필요했던 재단은 본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 박사의 이름을 딴 ‘세민얼굴기형돕기회’로 결정됐다.

백롱민 교수가 지난 2008년 베트남 의료봉사 현장에서 수술한 어린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있다.
백롱민 교수가 지난 2008년 베트남 의료봉사 현장에서 수술한 어린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있다.

▶ ‘깜언(고마워요), 닥터 백’… ‘의술은 예술’이라는 ‘의료봉사의 새길’을 열다=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베트남과는 수교도 이뤄지지 않았고, 베트남전으로 인해 해묵은 앙금이 가시지 않았던 시기라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거리상 전달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편지는 물론 팩스조차도 질문에 답변을 받기 위해서는 일주일이나 걸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전 조율에만 6개월이 걸렸다.

힘겹게 시작된 봉사단의 현지 일정은 준비과정보다도 훨씬 더 험난했다. 첫 봉사를 떠나게 된 1996년엔 베트남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홍콩에서 경유를 해야 했고, 하노이 공항은 우리나라 시골 기차역 정도의 수준이었다. 게다가 봉사활동 기간이 짧고 의료진 수는 적은데 비해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아침 이른 시간에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수술이 이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백롱민 교수는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20여년 전에는 현지 병원의 수술방이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무통에 얼음을 담아놓고 선풍기를 돌려야 했고, 갑자기 정전도 자주 일어나서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전등을 켜고 배터리가 달린 도구로 수술을 이어갔어요”라며“베트남 의료진들은 한국 의료진이 기계처럼 스케쥴에 맞춰나가는 모습을 정말 놀라워했어요. 열흘에 수술 100건을 해도 기적이라던 사람들에게 일주일 만에 200명의 아이를 수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니까요.”라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성공적으로 첫 해 의료봉사를 마치고 두 번째 베트남 봉사 일정이 세워질 무렵, 갑자기 백세민 박사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백 박사가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업무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실무를 도맡고 있던 백롱민 교수가 베트남 의료봉사의 책임자로 나서게 됐다. SK그룹 역시 백롱민 교수가 백세민 박사의 뜻을 잇겠다는 강한 의지에 끝까지 후원하겠다고 답변을 보내와 큰 힘을 보탰다.

▶23년이 만든 신뢰, 그리고 국가우호훈장 = 23년 전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엔 많은 의료봉사단체들이 방문한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 당국자까지 나서서 환영 행사를 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지원하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의료봉사는 이미 ‘신뢰’라는 끈끈하고도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있다.

백 교수는 “선진국에서 의료봉사라며 찾아와서는 베트남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국에서 해볼 수 없는 수술법을 적용해보다가 사망까지 이른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아주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한국 봉사단과는 달리 아이들과 가족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오히려 헤집어놓는 해외 봉사단도 있어서 속이 많이 상했었습니다.”고 말했다.

백롱민 교수의 진심은 해외 의료진의 봉사활동을 의심스럽게 바라보곤 하는 베트남 정부조차도 감동시켰다. 백 교수와 SK는 2009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외국인이나 단체에 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국가우호훈장’을 수훈했다. 백 교수는 2014년에는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이 수여하는 인도주의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했다.

23년이나 봉사단의 활동을 옆에서 보고 듣고 함께해온 베트남 의료진들도 이제는 모두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백 교수는 매년 베트남 의료진을 장기 초청 형식으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데려와 6~12개월에 걸쳐 직접 성형외과 전반에 걸친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주요 수술도 참관하게 하고 있다.

“이제는 사전 검사와 수술이 가능한 아이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 수술 후 관리 등을 모두 베트남 의료진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베트남 의료진이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모든 아이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줄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내내 미소를 잃지 않는 백 교수의 얼굴에 베트남 어린이들의 웃음이 겹쳐 보였다. 매년 베트남에서도 가장 덥다는 5~7월에 방문하는 백 교수와 세민얼굴기형돕기회 의료진은 베트남 얼굴기형 아이들에겐 ‘한여름의 산타클로스’다.

백 교수는 말한다.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얼굴이 부끄러워 평생을 숨어 지낼 아이들에게 미소를 되찾아줄 수 있다면, 그곳이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미얀마든 국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태열 기자/


kt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