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성(姓)이 먼저냐가 꽤 중요한 것처럼 부각하는 시절이다. 뭔가를 추진하는 주역이 갈려서다. 김앤장이냐, 장앤김이냐 하는 경제컨트롤타워 책임자 구분에 가십(Gossip) 이상의 관심이 쏠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먼저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우선이냐는 문제다.
장이 앞서면 소득주도 성장파, 김이 먼저 나오면 혁신성장파 쯤으로 구분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교조(敎條)주의 면모가 있다. 원칙대로 직진을 주장한다. 소득이 분배되고, 돈이 돌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인내하라고 한다. 혁신성장은 시장을 본다. 규제를 없애 기업의 투자 물꼬를 트자는 주장이다.
애석하게도 누가 옳으냐가 무의미한 판세다. 경제가 초라하다. ‘경제는 실제론 엉망이 아니다’라고 설명해봐야 구차하다. 이미지가 그렇게 쌓였다. 노무현 정부가 초반 부동산으로 고전해 임기말까지 끌려다녔던 흑역사가 최저임금을 소재로 재연되려고 한다.
그래도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나라 살림의 큰 그림을 손 볼 기회는 몇 번 더 남았다. 결과가 별 볼일 없다면, 운전대 잡은 대통령과 액셀러레이터 밟은 참모가 박(薄)한 평가로 책임을 지면 된다. 어떤 길로 갈지, 선택의 문제다. 경제를 거덜내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다.
더 주목해야 할 건 원칙에 관한 투쟁이다.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틀 뒤면 취임 100일을 맞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치르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공격받는 중이다. 혁신을 추진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사는 ‘즉시연금 사태’로 소송전에 돌입했다. ‘금융검찰’ 금감원의 체면이 구겨졌다.
과묵한 편인 그는 3주 전 국회에서 신문 4개면(모두발언 제외 200자 원고지 약 76.3매)에 달하는 분량의 발언을 했다. ‘시장주의자냐, 관치주의자냐’라는 압박이 빗발쳤다. 한 문장을 완성해 답변하기도 힘들었다. 조각 난 그의 말을 녹취록을 따라 이어 봤다.
"금융사들이 소비자 쪽의… 신뢰가 상실했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대해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막을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저희들 역할이다”
분파(分派)를 따지자면 소비자보호파라고 한 셈이다. 서민 쌈짓돈 받아 이자장사로 고연봉을 나눠 가지면서 잊을만 하면 사고 내는 금융사의 구태는 용인하지 않겠단 뜻이다. 만사가 물 흐르듯 돌아갔다면 이런 새삼스러운 다짐도 불필요했을 거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혁신을 이렇게 정리했다.
“위대한 혁신은 절대로 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위대한 혁신은 반드시 아래에서 비롯된다. 나무들이 위에서 아래로 자라지 않고 땅에서 위로 자라듯이. 그럼에도 씨앗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윤 원장이 뿌리려는 ‘혁신 씨앗’이 착근할 수 있을진 전적으로 금융계에 달렸다. 아무리 날고 기는 관치를 해봐야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건 상식이고, 금융사는 거대해지고 있다. 원칙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금융계는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가릴 건 가리되, 소비자가 등 돌리면 끝이라는 걸 새겨야 한다. 금감원도 매사 월권하는 건 아닌지 항상 경계해 논란의 싹을 초기에 잘라야 한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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