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이후 9500억 순매도 최근 한달 외국인보다 더 팔아 ‘국내주식 비중축소’ 계획 영향 코스피 안전판도 없어져 우려도
국내 증시가 휘청일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던 연기금이 코스피에 등을 돌렸다. 코스피 지수가 저점으로 인식되던 2400선 밑으로 추락했음에도 불구, 최근 한 달 동안 연기금은 ‘저가매수’에 나서기는커녕 외국인보다 더 많은 주식을 팔아치우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힌 국민연금의 투자여력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연기금이 지수를 받치던 과거와 비교해 ‘바닥’의 깊이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이후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주식을 약 9462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최근 9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기록 중인데, 최근 한달 순매도 규모만 놓고 보면 연기금의 코스피 주식 순매도 규모(7268억원)는 외국인(2563억원)의 3배에 달할 정도다. 연초 이후 6월초까지만 해도 1조2000억원 가까이 코스피 주식을 쓸어담으며 지수를 떠받쳤지만, 이후로는 지수의 추락 속도가 빨라지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6ㆍ13 지방선거를 전후한 시점에 매매동향에 큰 변화를 보였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정치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연기금의 최근 행보는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던 과거와 대비된다. 연기금 중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연 단위 기금운용계획을 세우고 투자자산별 비중을 일정 수준 내외로 관리한다. 외국인 이탈로 증시가 추락하면 그에 따른 평가액 하락으로 투자자산 내 비중 역시 떨어지는데, 국민연금은 이를 목표치 근처로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자연스레 ‘저가매수’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기금이 공공 성격을 갖고는 있지만,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며 “다만 기금운용계획에 따라 목표 비중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다보니 시장이 하락할 때 매수 규모가 늘어나는 운용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5년 월간 누적 기준으로 외국인이 순매도를 기록한 것은 모두 스물일곱 번인데, 이 중 연기금이 ‘팔자’에 동참한 것은 다섯 번 뿐이다. 그러나 이 다섯 번 중에도 순매도 규모가 1000억원을 초과한 것은 올해 6월 뿐이다. 코스피가 2220선으로 주저앉은 이달에도 연기금의 주식 매도 규모는 커지고만 있다.
연기금이 더 이상 ‘저가매수’에 나서지 않게 된 것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과 무관치 않다. 지난 5월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019~2023년 중기자산배분안’과 ‘2019년 기금운용계획안’을 심의ㆍ의결했는데, 이 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4월 말 기준 전체 기금자산 중에서 21.3%를 차지하던 국내주식 비중을 올해 말까지 18.7%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물론 국민연금이 연간 자산배분 목표비중에 ±2%포인트 수준의 여유를 두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4월 말 이후로 약 1조6000억원 수준의 투자 여력이 있다. 그러나 국내주식이 늘어나는 속도를 줄이겠다는 방향성은 뚜렷해 보인다.
국민연금이 올해 여유자금 중 국내 주식에 할당한 금액이 9400억원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연기금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4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1조2568억원으로, 이미 할당금액을 넘어섰다. 특히 올해는 코스닥 시장에 투자한 금액이 연초 이후 5200억원에 달한다. 코스닥에 투자한 금액을 거둬들이지 않는 이상, 코스피에 추가로 투입할 자산은 2000억원 내외라는 계산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증시 전문가들이 과거 추이를 근거로 코스피 바닥을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인 2300선 언저리로 전망하고 있지만, 국내 주식의 7%를 좌우하는 국민연금이 더 이상 구원투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낙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