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ㆍ日, 점진적 제재완화 기조에 불만 -美전문가 “만경봉 92호 한국입항은 북한의 승리”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정부가 단독제재 대상인 북측의 만경봉 92호의 동해 목호항 입항을 허용하면서 한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조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6일 만경봉 92호의 국내입항은 지난달 마식령 스키장 남북공동훈련을 위한 방북단의 전세기에 이은 두 번째 제재 유예 사례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만경봉 92호의 국내입항과 관련해 미국과 여전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경봉 92호가 이날 오후 5시께 동해 묵호항에 입항한다고 통일부가 발표한 현 상황에서 미측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9시 50분께 만경봉 92호가 해상경계선을 통과해 동해 묵호항에 예정대로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지연관현악단 14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 예술단은 묵호항에 정박한 만경봉 92호를 숙소로도 사용할 예정이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8일 강릉 아트센터,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만경봉 92호는 미국의 단독제재 대상도 아니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한미 간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측은 우리 정부의 단독제재 유예가 북측이 대북제재를 무력화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복수의 미국과 일본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지난 4일 북측의 만경봉 92호 국내입항 소식을 미측에 알리고 협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초 지난달 15일 남북 실무접촉을 통해 북측 예술단의 육로이동을 합의한 사항이 깨진 배경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측이 4일에 (입항의사를) 알려와 어쩔 수 없었다”면서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당국자들은 ‘한미일 3국 연대’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불만을 공식적으로 내비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신 및 간접채널을 통해 불만을 비공식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실제 백악관 관계자는 5일(현지시간) CBS 등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만나 북측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제재 유예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한미 간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면서도 갈등이 있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도 이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만경봉 92호를 한국 항구에 입항시키는 것은 북한의 ‘승리’(victory)라며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고스 국장은 만경봉 92호의 한국입항으로 한국의 대북 독자제재인 ‘5ㆍ24조치’가 무너지는 선례를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점진적으로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소식통은 “당장 만경봉 92호를 이용해 북측이 남측에 있는 동안 제재물자나 현금을 실어나르지 않는다는 보장을 한국 정부가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북측의 신뢰만큼 미국과 일본과의 신뢰도 중요한 것 아닌가”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측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명목으로 한 선박 및 항공기 이용은 북측의 핵ㆍ미사일 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만경봉 92호에 대한 제재예외를 적용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거듭되며 각국의 독자 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은 서로 허점을 보완하며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한미일 3국은 북한에 기항했던 외국 선박의 자국 입항을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는 북한 선박의 입항을 전면 금지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대북제재의 기본 취지는 대량살상무기 활동에 대한 포괄적 심리ㆍ실질적 압박에 있다”면서 “북측이 만경봉호를 통한 항구입항을 통해 ‘제재는 부당한 것이고, 서서히 풀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담보없이 이를 받아주는 움직임을 보이면 북미대화를 중재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만경봉 92호는 19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맞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모은 성금 40억 엔으로 건조됐다. 만경봉 92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도 북한 응원단을 수송하고 응원단의 숙소로 사용된 바 있다. 만경봉 92호는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의 북한 송금과 기타 물자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도 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만경봉 92호의 입항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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