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한국이 미국 공군 차세대 고등훈련기(APT) 사업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수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단 총 18조원 규모이고 향후 50조원대까지 확대 가능성이 높은 이 사업의 사업자 최종 결정 시기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이 때문에 다음달 선출되는 19대 한국 대통령은 임기 시작 첫 해에 우연히 자신의 최대 업적을 남길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됐다.

APT 사업의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성사만 되면 세계 최첨단 항공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에 항공기를 수출한다는 점에서 비용 이상의 국제적 위상 및 이미지 제고가 예상된다.

또한 미국 항공기업계에서도 가장 민감한 분야인 전투기 분야에 한국이 진출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드라마틱한 발전사에 새 장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김수한의 리썰웨펀] 韓, 美공군훈련기 수출 호재…19대 대통령 최대업적될 듯
[김수한의 리썰웨펀] 韓, 美공군훈련기 수출 호재…19대 대통령 최대업적될 듯

6.25 전쟁 이후 폐허에서 미국의 원조로 시작된 나라로 세계에 알려진 한국은 지난 2009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국가로 가입하며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이어 이번에 원조국이던 미국에 전투기를 수출하는 국방 선진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APT 사업은 미 공군이 40년 이상 노후된 훈련기 T-38을 총 160억달러(약 18조원)를 들여 350대 전면교체하는 사업이다. 미 공군이 도입하면 미 해군 등의 추가 수요가 이어지고 미국 동맹국들도 연쇄적으로 구입할 가능성이 커 이 경우 수출 규모는 1000대 이상, 금액상 최대 50조원대까지 늘어난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6년까지 10년간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무기는 총 36조원에 달한다. 만약 APT 사업을 한국에서 수주하게 되면 한 방에 지난 10년간의 무기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릴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에 한국이 단독으로 진출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최대 50조원의 매출을 오롯이 접수하는 건 아니다.

▶한국항공우주-美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 유력=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현대우주항공 통합으로 1999년 출범한 한국항공우주(KAI)가 미국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한다.

이 컨소시엄에서 KAI는 부품 생산과 반제품 조립을 맞고, 록히드마틴은 최종 조립과 소프트웨어 공급을 맡는다. 제작 프로세스는 KAI의 경남 사천공장에서 날개, 동체, 꼬리 등 전투기의 주요 부위를 4~5개 부분으로 조립한 후, 록히드마틴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공장으로 가져와 최종 조립하는 형태다.

현대 무기체계의 총아는 하드웨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한국 방산업체가 갈 길은 멀지만, 그 턱 밑까지 갔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경쟁사들도 막판까지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여 수주를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태다. 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을 포함해 스웨덴 사브와 미국 보잉 컨소시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미국 레오나르도 현지법인, 터키의 TAI와 미국 SNC 등 총 4개의 컨소시엄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중에서 KAI-록히드마틴이 제조한 T-50A 고등훈련기, 사브-보잉의 BTX-1 고등훈련기의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결정 요인은 기본 성능인 전투기 최대 속력과 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개 컨소시엄 제품은 모두 초음속 전투기 능력을 구비했지만, T-50A가 마하 1.5, BTX-1이 마하 1.1로 T-50A이 더 빠르다.

가격 경쟁력도 T-50A가 높다.

T-50A는 KAI가 지난 2001년 자체 기술로 개발한 국산 T-50 훈련기를 미 공군 요구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T-50은 이미 동종의 훈련기 중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 56대를 수출했고 200대 이상을 양산해 2조원에 달하는 개발비를 거의 회수한 상태다. 반면 BTX-1은 사브와 보잉이 이번 입찰을 위해 개발 중인 제품이어서 개발비 등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T-50보다 낮은 금액을 써내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KAI 측은 APT 사업자로 한 번 선정될 경우 파급 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입찰 가격을 통한 수익 창출은 의미가 적다고 보고 입찰가를 최대한 낮춘다는 방침이다. 즉 최대 속력과 가격 면에서 모두 KAI-록히드마틴 측이 객관적으로 우세하다는 얘기다.

10년 이상 운용된 T-50의 안정성 또한 강점이다. 게다가 T-50A는 경쟁사 훈련기에는 없는 첨단 기능인 공중급유 장치를 장착해 작전 시간도 연장할 수 있다는 ‘플러스 알파’까지 있다.

▶입찰준비 완료…남은 변수는?=KAI는 지난해 11월 미국 그린빌 공장 도널슨 센터 공항에서 T-50A 시험비행을 선보였고, 지난달 30일 APT 사업 최종제안서를 미 공군에 제출한 상태다.

또 지난 10일 그린빌 공장에서 다시 한 번 T-50A 두 대의 시험비행과 함께 현지 조립라인을 외부에 처음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사실상 이 사업 입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낸 셈이다.

[김수한의 리썰웨펀] 韓, 美공군훈련기 수출 호재…19대 대통령 최대업적될 듯

이날 하성용 KAI 사장은 언론에 “모든 준비는 끝났다. 미 공군이 반드시 T-50A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미간 방산 협력도 T-50A 순항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지난해 9월 한미가 합의한 감항인증 상호인정 제도에 따라 T-50A는 미국 당국에서 별도의 감항인증 등과 관련된 별도의 행정 절차를 밟지 않고 초고속으로 미국 비행이 승인된다.

강력한 경쟁자인 사브-보잉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미주리즈 세인트루이스에서 후보기 N-381의 첫 시험비행을 선보인 바 있다.

변수는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 국방산업을 록히드마틴이 이끌어갈 것인지, 보잉이 추격할 것인지 여부다.

일단 보잉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6일(미 현지시간) 현직 보잉 수석 부사장인 패트릭 샤나한을 국방부 부장관에 지명하면서 흐름을 탔다는 관측이 나온다. 패트릭 샤나한은 보잉미사일방어시스템 부사장, 필라델피아아 소재 로토크래프트 시스템의 부사장 등을 지냈고 이때 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 CH-47 치누크 수송헬기, AH-64D 아파치 공격용헬기 등 미 육군 항공기 업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보잉은 트럼프 정부에서 요청한 300억달러(약 34조원)의 긴급 국방비 증액안 중 43억(약 4조9000억원)달러 어치를 수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잉이 생산하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 P-8 포세이돈 대잠초계기, AH-64E 아파치 헬기, C-40 클리퍼 수송기, M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 등이 해당된다. 아울러 보잉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때 100만달러(약 11억원)를 기부한 것마저 민감하게 거론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트럼프가 북한의 심각한 도발 시도에 자극받아 한미동맹 등을 고려해 KAI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린지 그레이엄(공화당,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 상원의원은 지난 10일 그린빌 공장 T-50A 조립라인 공개 행사에 참석해 “T-50A를 구매하면, 한미동맹이 확고하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록히드마틴 중동 담당 사장을 지낸 해군 특전단 네이비씰 출신 로버트 하워드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 지명했지만 무산된 것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도 관심거리다.

전통적으로 록히드마틴은 공화당을 지원해왔고, 보잉은 민주당을 지원해왔다는 점 또한 이번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 공화당 주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