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사드 배치는 한국 차기 대통령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고 본다.”
지난 16일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 당시 전용기에 동승했던 백악관 관계자의 발언이다.
이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한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도 흔들림 없이 사드 배치를 서둘러 추진하는 와중에 나온 의외의 뉴스였다.
이 발언은 차기 대선 지지율 1위인 문재인 후보의 ‘사드 차기 정부 결정론’에도 힘을 실었다. 문 후보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백악관 관계자의 이번 발언을 여러 번 옮기며 자신의 사드 관련 입장을 공고히 했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26일 새벽 성주골프장에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를 배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악관 관계자 “사드, 차기 대통령 결정” 발언은 실언=이 결정 열흘 전인 지난 16일 “차기 정부 대통령이 결정하는게 맞다고 본다”던 미국 백악관 측은 왜 이날 심야기습 사드배치작전을 벌인 것일까.
결과적으로 지난 16일 나온 백악관 관계자의 발언은 미국 측의 실언이었다.
조속한 사드 배치 입장을 가지고 있던 미 당국은 해당 관계자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나온 개인적 견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기존의 조속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는 26일 새벽 심야기습배치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즉, ‘한국 차기 대통령이 사드의 운명을 결정한다’던 백악관 관계자의 발언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지만, 며칠 뒤 ‘없었던 일’이 됐고 한국과 미국은 사드 배치를 그대로 밀어붙인 것이다. 다만, 백악관 관계자 발언에 큰 인상을 받았던 대중들은 미국 측이 그 발언을 사실상 취소한 사실을 몰랐다. 그렇다 보니 26일 주한미군의 사드 기습배치가 납득할 수 없게 여겨지는 것이다.
사드 배치는 이미 3년 전인 2014년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에 요구할 정도로 미군에게는 절실한 과제였다. 그러나 미국의 미사일방어(MD)시스템 편입 논란이 촉발될 수 있는 사드 도입을 한국 정부는 꺼렸고 2년여의 시간을 이른바 ‘3무 원칙(미국의 요청, 한미간 협의, 결정사항 등의 3가지가 없었다)’으로 끌게 된다.
미군이 한반도 사드 배치를 설득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는 이른바 사거리 1000㎞이 넘는 노동준중거리미사일(사거리 1300㎞) 이상의 북한 미사일도 남한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예로 지난 2014년 3월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높은 각도로 쏘아올려 약 650㎞ 거리에 떨어지게 하는 기술을 선보인 경우가 제시됐다. 북한이 노동미사일로도 한국의 주한미군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미사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높은 각도로 발사된 미사일이 역시 높은 각도로 떨어질 경우 요격이 쉽다’, ‘북한이 값이 비싼 노동미사일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사드는 남한 보호가 주된 임무가 아니라 미국 본토 방어용이자 중국 견제용이다’며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급했던 미군, 발언 취소 뒤 강행=한편, 이런 논리를 근거로 당시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현 NATO 연합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에 요구한 사드 배치는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지난해 2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시험발사 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 제재를 위해 중국 역할론이 부각됐지만, 중국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이자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 공식 논의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지난해 3월 사드 배치를 위한 한미공동실무단이 출범했고, 약 1년여 후인 이날 결국 사드 장비 실제 배치로 이어졌다.
지난 16일 백악관 관계자의 발언이 며칠 뒤 뒤집힌 사실은 당시 알려졌지만 대중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방한 첫날인 지난 16일 사드 배치와 관련해 자신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온 백악관 관계자 발언의 파장이 커진 데 대해 크게 화를 낸 사실이 지난 19일 국내 언론에 알려진 바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백악관 관계자의 발언은 공식적으로 전혀 조율되지 않은 개인적 발언인 것으로 정리됐다. 그동안 있었던 한미간 논의의 맥락에 어두운 관계자가 개인 판단에 따라 한 발언이라는 것.
이 소식통에 따르면 현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펜스 부통령에게 “사드 배치는 무척 민감한 사항인데 이런 식의 메시지가 확산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펜스 부통령은 해당 발언을 한 당사자와 공보팀에 “메시지 관리를 제대로 하라”면서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 측은 이날 저녁 바로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 명의로 “사드 배치와 관련한 미국의 정책에 변화는 없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다음날인 17일 펜스 부통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우리는 사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계속해서 배치할 것”이라며 26일 결과로 나타난 사드 기습배치의 전조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