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제 체육관에 소중한 두 분이 방문했습니다. 한 분은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김양곤(58년생, 임실, 한체대)이었고 또 다른 한 분은 그의 전주상고 동창이자 40년 지기인 제60회 전국체육대회 복싱 밴텀급 금메달리스트인 이용장(60년생, 전주, 전주대)이었죠. 두 분을 보자 문득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어록이 생각났습니다. “인생은 복싱과 마라톤이다.”두 종목은 가장 힘들다는 스포츠를 꼽으면 늘 앞뒤를 다투기에 케네디가 그런 말을 했나 봅니다. 김양곤은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는 복싱에 비해 마라톤은 쉼없이 자기 자신과 고독한 레이스를 펼쳐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다고 평했습니다. 그러자 복싱의 이용장은 “무슨 소리야. 이 사람아! 복싱은 상대방의 끊임없이 펼쳐지는 강타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질주해야 하는 운동이기에 더 힘들어”라고 맞대응 했죠.여담이지만 김양곤은 뉴델리의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 진행된 당시 레이스에서 수많은 기권자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쉼없이 뛰어 58년 이창훈의 도쿄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24년동안 긴긴 동면에 빠져있던 한국 마라톤에 부활을 알렸지요. 이 경기 후 한국 마라톤은 마치 숨고르기를 마친 것처럼 김원탁 황영조 이봉주 지영준 등이 연달아 아시안게임을 제패하는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현재 한국 복싱도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활의 서곡을 알리는 때가 서서히 다가오지 않나’ 하고 자문해 봅니다.복서 이용장은 현역시절 킹스컵 대표 출신의 이봉래(한체대)를 2차례 꺽은 것을 비롯해 청소년대표 출신의 임창용(동아대)과도 1승1패를 기록했으며, 60회 전국체전 결승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김평국(60년생, 진주, 경상대)과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판정승을 거둔 강자였습니다.
김양곤, 이용장 두 선배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15년 전 문성길 체육관을 방문해 담소를 나눴던 마라토너 황영조가 생각납니다. 문성길도 전직 마라토너였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색달랐죠. 황영조는 건국 이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92년, 바로셀로나)였고, 문성길 역시 한국인 최초의 복싱 세계선수권자(86년, 리노)였습니다. 한국 마라톤과 복싱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문성길은 78년 하프마라톤 선수로 전남체고에 특기생으로 입학하려다 좌절되자, 1년 재수해 이듬해 목포 덕인고에 육상 특기생으로 진학한 육상선수였습니다. 당시 문성길의 하프마라톤 기록은 1시간10분 대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평범한 선수였다고 합니다. 기록이 저조한 이유는 중학교 때 취미로 기계체조를 연마하면서 체형이 마라톤에 부적합해졌다고 합니다. 결국 문성길은 79년 복싱으로 전환한 후 입지를 구축했죠. 문성길은 마라토너 출신답게 샘처럼 솟아나는 강철 체력과 기계체조로 단련된 강펀치를 선보였습니다. 아마와 프로에서 모두 세계 정상에 올랐던 한국의 유일한 복서입니다. 이를 보면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은 속도가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에필로그> 현재 대한복싱협회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영재 심판위원(60년생, 대전)이 최근 이순을 앞둔 나이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전종합체육관 관장이기도 한 임영재 위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종합체육관에서 김종태 관장(작고)의 문하로 들어가 김수원, 박일규, 오인석, 지택림, 이상은, 한정훈, 김승택, 블도저 박 등 기라성 같은 복서들과 동문수학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 양친을 잃으며 고아가 된 그는 가난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고교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복싱을 수련해 충남선수권에서 국가대표(페더급) 송광식(64년, 청운실고-동아대)을 꺽고 우승하는 등 충남대표선수로 10년 이상 전국체전에 참가했죠. 그가 주로 대통령배와 전국체전에서 호성적을 낸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출전 경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비가 지원되는 시도대항전을 대비해 훈련한 것입니다. 이 분의 삶을 반추해 보면 문득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3가지 하늘의 큰 은혜를 입고 태어났다. 가난하게 태어났기에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하면서 다양하게 세상 경험을 할수 있었고, 허약한 몸은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몸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게 했으며,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학력은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면서 지식 함양에 최우선을 뒀지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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