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현산업정보학교 ‘학교 PC방’ 가 보니…

“이 캐릭터 조합으로 가자. 내가 캐리(carryㆍ승리에 결정적인 역할)할게.”

청소년 20명이 컴퓨터 30대 앞에 쪼르르 모였다. 앉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실행시키더니 치열한 전략 회의를 진행했다. 키보드 소리가 주변을 메우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이겼다!” 한 아이가 함성을 지르는 순간 비로소 환호성이 쏟아졌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PC방이라 불리는 컴퓨터실은 게임 수업을 듣기 위해 몰려든 중ㆍ고등학생들로 붐볐다. 최신 컴퓨터에 초코파이 등 간식이 가득한 이곳에서 게임을 하는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게임 신화를 설명하는 인문학 수업을 듣고 있는 청소년들. 평소에는 10분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다.
게임 신화를 설명하는 인문학 수업을 듣고 있는 청소년들. 평소에는 10분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다.

마포구와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지난 4월부터 ‘게임 과몰입’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토요일을 활용, ‘게임 과몰입 치유 및 재능개발’ 9주 교육을 시작했다. 게임을 막지 말고 활용해보자는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의 아이디어로 시작, 3회차로 접어든 교육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기수에는 교육을 마친 참여 학생 13명 중 약 70%에 해당하는 9명이 학교 설문조사에서 ‘게임 과몰입’에서 벗어나 ‘일반’ 판정을 받기도 했다.

교육은 게임 ‘한 판’이 끝난 후 자연스레 영어ㆍ인문학 수업으로 이어졌다. 시선들이 일제히 칠판을 향했다. 영어 단어는 모두 게임 용어로 이뤄졌다. 실제로 시중 게임 중 상당수는 인문학 속 각종 신화를 각색ㆍ구성된 경우가 많다. “인문학을 알아야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교사의 ‘결정타’ 같은 한 마디에 학생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이후 게임에 대한 생각 등을 쓰는 글짓기 수업 시간. 모두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A4 용지 한 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보통 10분도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김강산(13) 군은 “처음에는 게임을 더 잘하려고 단어를 외웠는데 이제는 영어 자체에 흥미가 생겼다”며 “요즘은 (게임보다) 영어와 글쓰기가 더 재미있다”고 했다.

방 교장은 “교육을 구상했을 때 ‘막아도 모자랄 판에 학교에서 게임을 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많이 혼났었다”면서 “이제는 어느 기관ㆍ단체도 하지 못 한 기적을 만들고 있다”며 뿌듯해 했다.

실제 방 교장이 보여준 글짓기 시간에 쓴 글을 보니 ‘영어 단어 외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즘은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이 게임보다 더 즐겁다’ 등 ‘게임 과몰입’에 빠졌던 청소년들이라고는 보기 힘들 만큼 깜짝 놀랄 글이 많았다.

방 교장은 “다른 분야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게임을 활용하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앞으로도 마포구와 교육 사업을 계속 키워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원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