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유지 가구 조기연금 수급률 26.5%…소득 급감 가구는 18.1%
월평균 연금액 192만원 vs 53만원…수급액 격차 3.6배
건보료 부담 회피도 조기수급 유인…“부분연금 도입·저소득층 지원 확대해야”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발생하는 소득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조기노령연금이 정작 소득이 급감한 취약계층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구에서 더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줄어 생계유지가 어려운 가구보다 기존 소득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린 가구의 조기연금 수급률이 더 높았다. 노후 소득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국민연금이 가구의 경제력에 따라 활용도와 수급액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중고령층 소득공백(Income Crevasse)의 현황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이후 공적연금 수급 전까지 소득공백을 겪는 가구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조기노령연금 수급률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진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2019~2025년)를 활용해 제도적 소득공백기를 지나는 가구를 분석한 결과, 정년 이전 중위소득 수준을 100% 이상 유지하거나 소득이 증가한 가구의 공적연금 조기 수급률은 26.5%로 집계됐다. 반면 정년 이전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취약가구의 조기 수급률은 18.1%에 그쳤다. 두 집단 간 격차는 8.4%포인트다.
조기연금을 통해 확보하는 소득에서도 차이가 컸다. 소득을 유지하거나 늘린 가구의 월평균 공적연금 수령액은 191만8000원에 달했지만, 소득이 절반 미만으로 줄어든 가구는 52만7000원에 불과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구가 취약가구보다 3.6배 많은 연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해당 통계는 국민연금 조기노령연금의 개인별 수급액만 비교한 것은 아니다. 가구주와 배우자 등 가구원 전체가 받는 공적연금 합산액으로,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직역연금도 포함됐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가구에 고액 연금 수급자가 포함된 영향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조기노령연금의 감액 구조다. 국민연금은 정상 수급 연령보다 최대 5년 일찍 받을 수 있지만, 수급 시기를 1년 앞당길 때마다 연금액이 6%씩 줄어든다. 5년을 앞당기면 정상 수급액보다 30% 적은 금액을 평생 받게 된다.
예컨대 정상 수급 시 매월 1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가입자가 5년 일찍 연금을 신청하면 월 수령액은 70만원으로 줄어든다. 소득공백기에 당장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후에도 감액된 연금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노후소득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조기노령연금을 활용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금 수급권을 확보해야 한다. 과거 안정적인 일자리를 바탕으로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일수록 조기 수급을 선택하더라도 생활비를 충당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조기노령연금 신규 수급자 가운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 이상인 장기 가입자 비중은 빠르게 증가했다. 남성은 2014년 47.4%에서 2024년 77.2%로 높아졌고, 여성도 같은 기간 16.2%에서 34.7%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반면 정년 이후 실직이나 소득 감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은 조기연금을 신청하더라도 충분한 생활비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입기간이 짧거나 보험료 납부 이력이 불안정할수록 수급액이 적어지는 국민연금 구조 때문이다.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도 조기연금 수급을 늘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득 인정 기준이 종전 연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아지면서 공적연금 수급액이 많은 일부 은퇴자는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연금 수령 시기를 앞당길 유인이 생겼다.
정상 수급 시 연금소득이 피부양자 인정 기준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입자가 조기 수급을 선택해 연금액을 낮추면 건강보험료 부담을 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연금 수령액이 줄더라도 건강보험료 부담까지 고려하면 조기 수급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저소득층에서는 국민연금을 수령하면 기초연금이 감액되거나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가 줄어드는 구조가 연금 가입과 수급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득공백기에 공적연금이 충분한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다른 복지제도와의 연계에서도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조기에 받더라도 연금 전액을 감액하는 현행 일괄 수급 방식 대신 필요한 금액만 나눠 받는 '부분연금제' 도입을 제안했다. 소득공백기에 필요한 만큼만 연금을 앞당겨 받고 나머지는 정상 수급 시점 이후에 받도록 해 평생 연금액 감소를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건강보험료나 기초연금 등 다른 사회보장제도와의 연계 구조를 정비하고, 실업크레딧과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을 확대해 취약계층의 국민연금 가입 이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년연장 논의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의 소득공백을 해소하는 문제도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연금 수급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이 공백기를 버틸 수 있도록 고용과 연금, 복지제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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