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강달러·외국인 매도세에도
원/달러 환율 2년만에 최저 이례적
반도체 달러·선제적 긴축 영향 분석
두바이유 36% 뛸 때 환율 12% 하락
달러 가치 올라도 원화 오히려 강세
외국인 자금 넉달간 768억弗 순유출
최근 외환 시장에서는 기존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가와 달러 가치가 오르고, 외국인 순매도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서다.
그 배경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달러 공급 확대가 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급증하면서 외환 시장에 달러가 압도적인 규모로 풀리고 있다.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상도 환율의 하방 압력을 키우고 있다. 외환 당국에서는 환율이 추가로 떨어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반도체 경기가 환율 흐름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강달러·외국인 매도세에도…환율 2년 만에 최저=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1원 떨어진 1330.3원이었다. 2024년 10월 2일(1319.3원) 이후 약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6월 말(1549.4원)과 비교하면 넉 달도 안 돼 219.1원(14.1%) 급락했다. 장중 저가도 1327.6원으로 2024년 10월 2일(1317.1원) 이후 가장 낮았다. 20일 오전 9시 현재 원/달러 환율은 1330.7원에서 거래되고 있다.
환율이 떨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달러를 사려는 사람보다 원화를 사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환율은 한마디로 원화와 달러의 교환 비율이다. 원화를 사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달러를 원화로 사는 가격, 즉 환율은 떨어진다. 반대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많으면 환율은 오른다. 결국 환율 하락은 달러보다 원화 수요가 더 큰 상황을 의미한다.
최근 환율 하락세는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환율을 끌어올리는 대표 변수 세 가지가 모두 상승 쪽으로 움직였는데도 환율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국제유가다. 원유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유가 급등은 대표적인 원화 약세 요소다. 달러 유출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경기 침체 우려가 번지면서 외국인의 투자 심리도 악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추이를 보면 정반대 흐름이다. 6월 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79.45달러에서 10월(16일까지 평균) 108.09달러로 35.8% 뛸 동안 원/달러 환율은 1527.95원에서 1341.48원(19일까지)으로 12.2% 떨어졌다.
또한 달러 가치가 오르면 환율도 상승 압력을 받는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원화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에서 10월 평균 환율이 12.2% 떨어질 때 달러인덱스는 100.32에서 102.19(10월 1~16일)로 오히려 1.9% 올랐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주식이나 채권 등을 팔고 매도 대금을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환율은 오른다. 한은에 따르면 외국인 증권 투자자금은 6월부터 9월까지 넉 달 연속 순유출되며 총 768억40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같은 기간 월평균 환율은 1527.95원에서 1358.75원으로 11.1% 오히려 떨어졌다.
▶‘반도체 달러’ 공급이 압도…선제적 긴축도 원화 강세 힘 실어=이 세 가지 요소는 통상적으로 달러 수요를 늘리거나 원화 매력을 떨어뜨려 환율을 끌어올린다. 그럼에도 최근 환율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은 그보다 더 많은 달러가 시장에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달러’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에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경상수지란 한 국가와 다른 나라 간 일상적인 경제 거래의 차액을 나타내는 지표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것은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외국에 지급한 돈보다 많다는 뜻이다.
8월 경상수지 흑자는 461억1000만달러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올해 8월까지 누적 흑자 규모는 2792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던 지난해 연간 기록(1231억달러)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한은은 올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4500억달러로 전망했는데, 최근 추세대로면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기업들이 외환시장에 내놓는 달러도 크게 늘었다. 한은이 김남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비금융 민간기업의 현물환·선물환 순매도액은 1869억달러로 지난해 상반기(584억9000만달러)의 3.2배였다. 시장에선 그동안 고환율에 환율의 추가 상승을 기대하며 매도를 미뤘던 기업들이 점점 달러를 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에 쌓인 달러도 점점 늘고 있다. 그만큼 향후 환율 추가 하락 여지가 큰 셈이다. 한은에 따르면 8월 말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1406억2000만달러로 통계 집계 이래 가장 컸다. 전월 말(1283억4000만달러)보다 122억8000만달러 증가하며 두 달째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기업 달러화예금이 1056억4000만달러로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은의 긴축적 통화정책도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 한은은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하며 미국과 금리 차이가 1.25%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줄었다.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면 달러는 강세, 원화는 약세 압력을 받으면서 환율에는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올해 들어 7·8월 금리를 두 차례 인상함으로써 환율이 상당히 안정됐다”고 자평했다.
▶당국은 추가 하락 전망…반도체 경기 등 변수=외환 당국은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 총재는 국감에서 “환율이 1330원대지만 아직 예년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앞으로 추가 강세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음날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대담에서도 “원화는 올해 상반기 매우 약세였지만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전환한 이후 상당 폭 절상됐다”며 “추가 절상 여지가 있다고 보고, 일정 부분 추가 절상이 이뤄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16일(현지시간) 방콕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7월 환율이 1550원대까지 갔는데 그 당시 모습이 오히려 우리 펀더멘털(기초여건)을 벗어난 모습”이라며 “현재는 경제 펀더멘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변수는 반도체 경기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줄면서 달러 공급이 급격히 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 논란에 최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가 8거래일 연속 하락하기도 했다. 이창용 전 한은 총재도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반도체 사이클이 10년씩 간다고 하는데 몇 년 만에 끝날 수 있는 게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며 정부의 확장 재정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 밖에 11월 국내 기업의 배당금 지급에 따른 외국인 달러 환전 수요 증가나 미국 중간선거 결과도 단기적으로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한은은 2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시장에서는 이번 회의에서는 동결한 뒤 다음 달 회의에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벼리 기자
kimsta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