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시 취임 4개월만에 금리인상 단행
“물가, 5년 넘게 목표 상회 의미있는 개선 없다”
이란戰 고유가 파급 우려…물가 안정 재확인
올 성장률 2.3%로 상향·실업률 4.1%로 하향
연말 금리 중간값 3.8서 4.1%로…추가인상 시사
트럼프 “빨리 기준금리 1% 이하로 내려라” 반발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취임 후 첫 금리 조정에서 ‘매파 본색’을 드러냈다. 미국 경제와 노동시장이 금리 인상을 감내할 만큼 강한 데다 현재 금융여건도 긴축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3년2개월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란 전쟁발 에너지 충격이 물가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연준 위원 대부분이 연내 추가 인상을 예상하면서 미국의 고금리 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연준은 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연 3.75~4.00%로 결정했다. 2023년 7월 이후 3년2개월 만의 첫 인상이다. 투표권을 가진 FOMC 위원 12명 모두 인상에 찬성했다.
워시는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황에 대해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그는 “5년 넘게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다”며 “분명한 사실은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여름 인플레이션 지표는 기조적인 흐름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말해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은 선택(inflation is a choice)”이라며 “오늘 우리는 물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강조했다. 이번 금리 인상을 단순한 한 차례의 정책 조정보다 연준의 물가 안정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로 규정한 셈이다.
워시가 금리 인상을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강한 미국 경제가 있다. 그는 “신규 채용, 민간 부문 소득, 기업 설비투자 등은 최근 몇 달 동안 개선됐으며 긍정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 역시 견조하다고 평가했다.
노동시장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판단했다. 워시는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는 대체로 완전고용 상태에 있다”며 “그렇다면 연준의 책무 중 다른 한쪽인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고용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해를 끼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책무가 중기적으로 서로 충돌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금리 수준이 이미 경제를 과도하게 누르고 있다는 판단도 부인했다. 워시는 “광범위한 금융여건을 긴축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며 이러한 견해가 이번 FOMC에서도 위원들 사이에 폭넓게 공유됐다고 밝혔다.
이번 인상에 대해서는 “완화의 일부(a dose of accommodation)를 제거했다”고 표현했다. 이미 지나치게 긴축적인 상황에서 추가로 경제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던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일부 거둬들였다는 의미다.
실제 연준의 경제전망도 ‘강한 경제와 끈질긴 물가’를 동시에 보여준다. 올해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은 지난 6월보다 0.1%포인트 높은 2.3%로 올라갔다. 내년 전망 역시 2.4%로 0.1%포인트 상향됐다. 올해 실업률 전망은 오히려 4.3%에서 4.1%로 낮아졌다. 반면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 전망은 3.6%에서 3.7%, 근원 PCE 물가상승률은 3.3%에서 3.4%로 각각 높아졌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2% 물가 달성 시점도 2029년으로 밀렸다. 경제와 고용은 예상보다 강한데 물가는 예상만큼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 금리 인상의 여지를 넓힌 것이다.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도 워시의 물가 경계심을 키웠다. 통상 중앙은행은 공급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에 금리로 대응하는 데 신중하다. 금리를 올린다고 원유 생산량이 늘거나 중동의 공급망이 복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시는 유가 자체보다 그 이후의 물가 확산을 문제 삼았다. 그는 “유가든 식료품이든 연준이 개별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할 일은 상대가격의 변화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돼 2차, 3차 효과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운송비와 항공료, 상품 가격으로 옮겨붙고 다시 임금과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악순환은 막겠다는 의미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정유시설 병목까지 겹친 최근 경유 가격에 대해 “마치 원유가 배럴당 200달러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시는 지난 7월 금리 동결 이후 판단이 달라진 배경도 설명했다. 지난 회의 이후 7주 동안 노동시장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표에서 미국 경제의 기초적인 성장세가 강해진 반면, 여름철 물가 지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개선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정학적 위험까지 커지면서 이날 만장일치 인상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워시는 최근 미 장기 국채금리 상승 배경으로는 미국 경제 강세와 자본을 둘러싼 경쟁, 지정학적 위험을 꼽았다. 특히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위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자본을 둘러싼 경쟁은 현실이며 금리 상승을 부분적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은 워시의 매파적 발언만큼이나 점도표에 주목했다. 전망을 제출한 FOMC 참석자 18명 가운데 16명이 이날 인상 이후에도 연내 최소 한 차례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12명은 올해 말 기준금리 목표범위를 4.00~4.25%, 4명은 4.25~4.50%로 전망했다. 현 수준인 3.75~4.00%를 예상한 참석자는 2명뿐이다. 이에 따라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 중간값은 지난 6월 3.8%에서 4.1%로 0.3%포인트 높아졌다. 내년 말 금리 중간값은 3.6%에서 4.1%로 0.5%포인트 뛰었다. 한 차례 추가 인상을 넘어 높은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인상폭조차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50bp를 한 번에 올리고 데이터를 지켜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워시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실하고 불투명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준의 금리 인상 직후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미국의 금리는 1%이거나 그보다 낮아야 한다”며 “우리는 세계에서 단연코 최고의 신용도를 가진 나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워시 의장은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에 대해 “대통령과의 논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면서도 “가장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물가안정으로부터 가장 얻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오늘 결정은 물가 안정을 보장하라고 의회가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특정 국가들과 무역을 끊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거듭된 질문에 그는 “연준 독립성의 일부는 우리 차선(본연의 임무)을 지키는 것(we stay in our lane)에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립성은 양방향 도로(투웨이 스트리트·two-way street)”라고 했다. 투웨이 스트리트는 양쪽이 서로 의무를 지며 주고받는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일방으로 관철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은유로도 해석된다. 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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