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팝업스토어
9900만 원 스피커에 ‘서울 에디션’까지
5060세대부터 젠지까지 비틀마니아 집결
“언어 넘어 통하는 것은 사랑의 메시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나란히 걸었던 런던 애비 로드가 서울에 상륙했다. 일렬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네 사람의 그림자를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팬들이 따라 걷는다. 횡단보도 너머 서울의 빌딩 숲과 서울타워가 포개지니,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한정판’ 풍경이이 됐다.
“제가 존 레논이에요.”
비틀스처럼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가진 열아홉 살 김나엘 군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는 그는 “어릴 때부터 비틀스를 좋아했는데 주변에 비틀스 팬이 없어 늘 혼자 들었다”며 “비틀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 자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갑다”고 했다.
1960년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한 후 단 10년의 활동. 그 기간, 한 번의 내한도 없었던 비틀스가 해체된 지 56년 만에 마침내 ‘서울’에 왔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지하 1층 식품관 반대편으로 자리한 100평 규모의 대행사장에 비틀스 서울 에디션 팝업스토어가 문을 연 것이다. 글로벌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는 이곳을 비틀스의 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9900만원 짜리 스피커에 ‘서울 비틀스’까지
비틀스의 팝업 스토어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팝업 스토어 ‘서울 에디션’은 기존 팝 스타들의 공간처럼 천편일률적인 굿즈 매장이 아니었다. 비틀스의 역사와 음악을 시각, 청각은 물론 소비 경험으로 옮겨놓은 ‘체험형 공간’이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단연 ‘청음 공간’이었다. 지니뮤직과 오디오 브랜드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가 참여,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음향적 유산을 계승한 장비로 비틀스의 명곡을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유니버설 뮤직 관계자는 “애비 로드 리미티드 에디션 스피커와 헤드폰으로 비틀스의 모든 곡을 들을 수 있도록 마련했다”며 “관람객마다 머무는 시간은 다르지만, 청음 공간에서 한 시간 넘게 음악을 듣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의 최고가 상품은 바로 이곳에 있는 바워스앤월킨스의 801 애비 로드 리미티드 에디션 스피커다. 전 세계에서 140세트(스테레오 한 쌍, 스피터로는 240개)만 제작, 원음에 최대한 가깝게 들을 수 있는 음향기기로 무려 9900만원에 팔고 있었다. 단 팝업 현장에서만 1500만원의 파격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비틀스의 ‘서울 팝업스토어’의 가장 명민한 기획은 MD(굿즈)였다. 글로벌 상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서울만의 정체성’을 녹여 ‘서울 비틀스’를 새롭게 만들었다. 한국과 서울의 이미지를 심어둬 서울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한정판 티셔츠와 모자, 키링 등을 가져왔다.
특히 비틀스의 앨범 ‘러버 소울(Rubber Soul)’의 로고를 ‘서울의 정서’와 연결해 ‘러브 서울(Love Seoul)’이라고 나란히 표기한 비니는 ‘신의 한 수’였다. 현장에서 만난 유관모 씨는 “‘러버소울’ 로고는 워낙 사이키델릭하고 독창적이라 좋아하는데 그것을 ‘러브 서울’과 연결된 모자들이 굉장히 예뻤다”고 했다.
남산서울타워 아래 펼쳐진 애비로드를 담은 티셔츠와 에코백, 기타 피크 등도 마련됐다. 스티커와 다양한 선물을 주는 체험형 이벤트 공간, 비틀스를 향한 메시지를 적는 공간도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비틀스의 음악을 전시한 공간은 팬들의 지적 탐구욕을 자극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을 알린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를 시작으로, 1970년 마지막 앨범 수록곡 ‘렛 잇 비(Let It Be)’까지 미국 빌보드 ‘핫100’에서 무려 20곡이나 1위로 올린 최다 기록 보유자의 음악사를 훑을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총 6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비틀스의 명작들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전시했다. 미국 레코드 협회(RIAA) 기준 미국 내에서만 1억7800만 장의 음반 판매 인증을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는 명반들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는 김나엘 씨(19)는 “여기에 와보니 당시 미국에서 나온 USA판도 볼 수 있었다”며 “특히 빈에서 오다 보니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미국판엔 독일어로 부른 곡이 들어있어 더 특별하다”고 했다.
비틀스는 실제로 1964년 독일 시장 공략을 위해 독일어 버전의 노래를 녹음했다. ‘아이 원트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 ‘쉬 러브스 유(She Loves You)’의 독일어 버전이 있다. 두 곡은 비틀스가 영국 밖에서 녹음한 유일한 세션으로, 1964년 1월 파리의 파테 마르코니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이 곡은 ‘아이 원트 홀드 유어 핸드’가 미국판으로 내슈빌에서 전 과정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한 ‘섬띵 뉴’ 에 들어가 있다. 팝업스토어엔 희귀 독점 음반과 역사적 발자취를 세심하게 구현했다.
세대·국경 넘은 팬덤…비틀스는 늙지 않는다
비틀스의 팬덤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확장 중이다. 팝업스토어 오픈 첫날 비틀스와 서울의 만남을 보러 온 관람객들은 성별, 국적, 연령대가 매우 다양했다. ‘팝 레전드’ 비틀즈는 그들의 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젊은 세대에 소구됐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가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비틀스의 곡은 약 17억 회 스트리밍됐고 스포티파이 전체 월간 활성 사용자의 약 10%에 해당하는 매달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비틀스의 음악을 들었다. 이 청취자 중 30%가 18~24세(Z세대)였다. 35세 미만의 청취자 비율은 무려 67%에 달했다. 현재 비틀스의 스포티파이 월간 활성 청취자 수는 약 3540만 명을 넘나든다.
주요 청취 도시는 멕시코시티, 상파울루, 시드니, 로스앤젤레스 등으로 전 세계 대륙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비틀스 곡 중 스포티파이 기준 최다 스트리밍 곡은 1969년 ‘애비 로드’에 수록,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히어 컴즈 더 선(Here Comes The Sun)’이다.
현장에서 만난 ‘비틀마니아’(팬덤명)를 통해서도 비틀스가 ‘현재진행형 레전드’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지하철 환승 길에 우연히 팝업스토어에 들렸다는 이상권 씨(59)는 “중학교 시절부터 비틀스의 음악을 접했다”며 “이미 1980년대는 비틀스가 활동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니 어릴적 음악적 우상과 재회하는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며 “비틀스를 시작으로 핑크 플로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등 영미권 음악에 눈을 떴다. 비틀스는 내게 음악을 알게 해준 뮤지션”이라며 웃었다.
비틀스를 여전히 ‘청년’으로 기억하는 Z세대들은 팝업스토어를 구석구석 탐구했다. 부모님이 모아둔 음반을 듣다 비틀스에 빠진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박상은 씨(27)는 “초등학교 때부터 비틀스를 좋아했는데 초기엔 ‘렛 잇 비(Let It Be)’나 ‘헤이 주드(Hey Jude)’와 같은 유명한 곡 위주로 들었다”며 “지금은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좋아한다. 비틀스는 다른 밴드나 가수와 달리 음악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기운이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비틀스의 자유로움은 반항이나 일탈로 점철된 록밴드의 분위기가 아닌 그들만의 상상력을 풀어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기존의 틀을 부수며 경계를 넘은 음악, 장르의 틀을 벗어난 해방감이 20대 팬들이 매료된 본질이다. 음악계 관계자는 “자극적인 쇼트폼 미디어와 빠른 호흡의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낀 Z세대에게 비틀스가 쌓아 올린 방대한 앨범 서사와 아날로그 사운드는 온전한 몰입을 선사하는 ‘딥 리스닝(Deep Listening)’의 신선한 도구”라고 해석했다.
‘비틀마니아’인 유관모 씨(19)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CD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비틀스에 빠지게 됐다”며 “그 시절 가장 좋아한 곡은 ‘컴 투게더’였다. ‘컴 투게더’, ‘헤이 주드’, ‘렛잇비’등 인기곡을 듣가 점점 다른 곡을 찾아듣고 어느새인가 없으면 못 사는 삶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팝업스토어에 전시된 앨범의 표지만 보고도 몇 년도 앨범인지를 맞히며 “불과 일 년 차이인데 조지 해리슨에게 찾아온 급격한 노화조차 너무나 특별하고 매력적”이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유관모 씨와 김나엘 씨는 2007년 동갑내기로, 비틀스를 향한 마음으로 만나 함께 밴드를 결성해 음악을 하고 있다. 아직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선 10대 밴드 원 데이 어 먼스(One Day A Month)다. 김나엘은 존 레논처럼 보컬과 일렉트릭 기타를 맡고 있고, 유관모는 조지 해리슨과 같은 기타리스트다.
팝업스토어는 두 사람에게 비틀스의 음악과 비틀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비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외롭게 음악을 들었는데 이 공간에 오니 행복하다”고 했다.
팬덤이 생각하는 비틀스 음악의 특별함은 그들이 ‘비틀스’라는 데에 있다. 김나엘·유관모 씨는 비틀스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비틀스이지 않냐”며 “사람을 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고, 이상권 씨는 “마약처럼 사람을 홀리게 한다”고 했다. 음악이 담은 메시지는 삶의 지표다. 김나엘은 “비틀스의 음악엔 언어가 굉장히 많다. 포크, 사이키델릭, 전자음악 등 어떤 나라의 악기와 장르, 그 모든 언어를 사용해 하나의 길로 통한다”며 “그게 모두 사랑이라서 듣는 공간에 사랑이 가득 차게 된다”며 비틀마니아의 통찰력을 들려줬다.
한국에 상륙한 비틀스 팝업스토어는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오는 30일까지 진행한 뒤, 다음 달엔 ‘팝업 성지’ 더현대(9월 4~13일), 이후엔 일산 킨텍스로 향한다. 유니버설뮤직 관계자는 “이미 첫날에서 1000명이 찾았고, 일주일간 1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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