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국내 주요 전동차 제작사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수도권 시민 수백만 명이 매일 타는 전동차를 만드는 기업이 무너지는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납기 차질 우려는 이미 일부 발주기관의 운행 계획 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철도차량 산업을 시장 논리에만 맡길 수 있는지 다시 묻게 한다.

오늘날 산업 경쟁은 더 이상 기업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미국은 CHIPS法에 따라 자국 반도체 산업에 527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유럽연합도 탄소중립 산업의 역내 생산 기반 확충에 국가보조금을 확대하고 있다. 철도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은 2025년부터 5년간 철도 인프라 첨단화에 약 1,080억 유로를 배정했고, 폴란드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자국 대표 철도차량 제작사에 공공자금을 투입해 정상화를 지원했다.

반면 우리 철도차량 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완성차 제작사는 손에 꼽을 만큼 줄었고, 남은 기업들도 구조적 저수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과점 구조임에도 어느 기업도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는 역설이다. 좁은 내수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데, 해외에서는 중국 CRRC 등 국가 지원을 등에 업은 거대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이중의 압박에 놓여 있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이 작동하지 않는 지금, 이를 보완할 공공의 역할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다만 그 방식은 세심해야 한다. 시장실패를 교정하려는 개입이 자칫 또 다른 공공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개선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과도한 저가 수주 경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발주기관이 입찰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참조형 기준가격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낙찰가격의 하한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강제 단가표도, 특정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 장치도 아니다. 과거 계약가격과 주요 부품 원가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비정상적 저가 투찰의 징후를 식별하고, 기준 범위를 벗어나면 소명 요구 등 후속 조치를 개시하는 행정적 판단 기준이다. EU 조달 지침도 비정상적 저가 낙찰에 대해 소명을 요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둘째, 가격과 함께 실제 사업 수행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재무 건전성과 생산 능력, 납기 이행 이력을 입찰 단계에서 살피고, 계약 이후에는 제작 공정률에 따라 선금 집행을 점검하는 체계가 갖춰질 때, 무리한 저가 수주는 실질적으로 억제된다. 또한 형식승인의 일환인 제작자 승인 단계에서 제작자의 설비·인력·기술 및 품질관리체계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정기적인 현장검사를 통해 운용 실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제작자의 실제 사업 수행 능력을 엄격히 검증하고 관리할 수 있다.

셋째, 시장참여자가 극소수인 만큼 정책의 조정자에게는 각별한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제작사와 발주기관, 정부와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정기 협의체를 두어 기준가격 현행화, 수급 불균형 조기 경보, 기술 혁신형 조달 같은 실무 의제를 다루고 그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제도는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해법은 제도의 조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준가격 체계가 저가 경쟁을 막는 안전판이라면, 기술 혁신형 조달은 그 공간을 메우는 성장 엔진이다. 3세대 고속철도 차량, AI 유지보수, 수소열차 등 미래 철도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그 성과가 실증과 발주, 해외 수출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국내 제작사가 좁은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지금은 철도차량 산업의 공정경쟁과 공공성, 산업기반을 함께 지킬 정교한 조정장치를 마련할 시점이다. 철도는 국민의 발이자 국가의 전략 자산이다. 지금의 위기가 우리 철도차량 산업의 체질을 다지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공명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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