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주택 소유자 절반가량이 60세 이상
매도·증여 등 조율하며 세무 상담 늘어
“대출 규제로 집내놔도 살 사람 없어”
이 아파트에서 45년을 살았어요. 집값이 이렇게 오를 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1가구 1주택자인데 나이 들고 소득이 없으니 ‘하우스푸어’가 됐습니다. 세금이 무서워 집을 팔아야 하는게 억울합니다
[헤럴드경제=윤성현·윤승현 기자]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서초구 반포동 일대가 술렁이고 있다. 고가주택을 수십 년간 보유한 고령 1주택자를 중심으로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 계산하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매도와 증여, 상속, 직접 거주 전환 등 선택지를 두고 세무사와 공인중개사무소를 찾는 발길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5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부동산등기 연령별 소유 현황에 따르면 전체 부동산 소유자 가운데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강남구 압구정동 46.5%, 서초구 반포동 44.4%로 나타났다. 두 지역 모두 부동산 소유자의 절반 가까이가 60세 이상인 셈이다.
특히 이들 지역에는 1970~1980년대부터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온 고령 원주민이 많다. 보유 주택의 자산가치는 수십억원에 달하지만 은퇴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집값 상승으로 세금은 늘었지만 이를 납부할 현금이 부족한 이른바 ‘하우스 푸어’ 문제가 초고가 주택가에서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압구정에서 40년간 거주했다는 A씨(81)는 “노인들이 집 한 채에서 40년을 움직이지 않고 살았을 뿐인데 갑자기 세금을 올리면 오도 가도 못한다”며 “부동산에 가보면 집을 내놓은 사람은 있지만 살 사람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B씨(85)는 “올해 재산세로 약 640만원을 냈다”며 “내 집에 살면서도 사실상 월세를 내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들이 지금은 집을 팔지 못하게 하지만 앞으로 3년 뒤 이주가 시작되면 더는 세금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내년 초까지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싸게라도 집을 팔고 이주할 때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포동에서도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고령층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반포동 한 공인중개사무소 C대표는 “정부 발표 직후 서너 명이 사무실을 찾았고 한 고객은 3~4시간 동안 앉아 걱정만 하다 돌아갔다”며 “실제로 매물을 내놓은 사례도 두세 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령층이 반포 주택을 처분한 뒤에도 지방보다는 기존 생활권과 가까운 방배·흑석·마포·성동 등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50억원대 주택을 팔고 20억~30억원대 신축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수도권 이주에 세제 혜택을 주더라도 낯선 지방으로 내려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포 일대 공인중개업소에는 세제개편안 발표 후 이 같은 전월세값 인상 문의도 이어졌다.
C대표는 “발표 당일 밤 9시가 넘어 2주택자인 고객이 전화해 ‘그냥 버티면서 월세를 올려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며 “본인 입으로 조세 전가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전했다.
이어 “그 고객은 2020년에도 버텼고 이번에도 집을 팔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며 “세입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월세를 올려 받으면 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장기보유·거주에 따른 양도소득세 공제액에 상한이 도입되는 점도 매도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내년까지 공제 한도를 두지 않되 2028년에는 20억원, 2029년부터는 최대 10억원까지만 공제하기로 했다.
압구정에는 1980~1990년대 이전 주택을 매입한 장기 보유자가 많아 양도차익이 50억원을 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압구정동 D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집을 반드시 처분해야 하는 집주인은 올해나 내년 중 매물을 내놓겠지만, 이 시기를 넘기면 높은 양도세를 부담하면서 팔기보다 증여나 상속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이주를 전제로 한 세제 혜택이 고령자의 생활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고령층의 자산 유동화를 지원하기 위해 수도권 1주택을 처분하고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만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기로 했다.
2027년에 주택을 매도하면 5억원 한도에서 최대 50%, 2028년에 매도하면 3억원 한도에서 최대 30%를 감면한다. 압구정에 거주하는 70대 E씨는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할 노인에게 지방으로 내려가 기차와 버스를 타고 서울 병원에 다니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세 부담이 커지는 주택 가격 구간을 피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주택으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세제개편으로 단계별로 공제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고 다주택자나 특정 가격대에서 세 부담이 크게 높아지는 구조”라며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구간을 피하려는 수요가 20억~30억원대의 이른바 ‘덜 똘똘한 한 채’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까지는 30년 이상 장기간 주택을 보유한 고령자가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을 적용받을 수 있어 실제 양도소득세 부담을 개별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 주택에 계속 거주할지, 매도 후 이동할지는 결국 각 가구의 소득과 자산 상황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고령 1주택자 ‘세금 낼 돈 없으면 나가라’ #세제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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