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89% “AI 활용 중·도입 검토”…합성의약품·항체 등 적용 확대

신약 R&D 속도전…한미·동아·목암, AI로 후보물질·백신 설계

‘스마트공장’ 셀트리온 등 제조·사무·유통 전반으로 ‘AX’ 확산

한미약품 미래성장부문 한승수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ISMB 2026에서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 ‘HARP-pSAR’를 활용해 근육 강화 기반의 비만 신약 파이프라인을 도출한 연구 내용이 담긴 포스터를 토대로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미약품 제공]
한미약품 미래성장부문 한승수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ISMB 2026에서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 ‘HARP-pSAR’를 활용해 근육 강화 기반의 비만 신약 파이프라인을 도출한 연구 내용이 담긴 포스터를 토대로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미약품 제공]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인공지능(AI)을 연구개발(R&D)부터 공정, 물류, 규제 문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반에 접목하는 ‘AX(AI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순한 업무 지원 도구를 넘어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비약적으로 줄이고 기업 체질을 개조하는 핵심 동력으로 AI가 자리 잡으면서, 제약바이오 생태계 전반의 경쟁 구도가 급변하는 모양새다.

업계 89% “AI 도입했거나 계획”…R&D 중심 활용 고도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연구원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및 AI 전문기업, 연구기관 4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3%(26명)가 이미 AI를 신약 개발에 활용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도입을 검토·계획 중이라는 응답(23명)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9.1%가 AI 활용에 뜻을 모았다. AI가 적용되는 주된 분야는 후보물질 식별 및 최적화(각 15명), 화합물 식별(11명), 작용기전 분석(9명) 순으로, 전통적 방식의 R&D 한계를 극복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개발 희망 모달리티(치료 접근법)로는 합성의약품(49.1%)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바이오의약품·항체(21.8%), 표적단백질분해(TPD·10.9%), 항체-약물접합체(ADC·9.1%) 등 차세대 바이오 영역으로 AI 활용 저변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한미약품 혁신신약부터 동아·목암까지…AI 신약 플랫폼 경쟁 본격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현장의 AI 신약 개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한미약품은 독자 AI 플랫폼 ‘HARP-pSAR’을 활용해 단백질 서열을 정밀 설계, 체중 감량과 근육 증가를 동시에 실현하는 혁신신약 후보물질(HM17321)을 발굴하고 미국 임상 1상에 진입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IT 계열사 DAI와 동아에스티의 연구 역량을 결합한 지능형 신약개발 플랫폼 ‘AIDDP’를 구축해 후보물질 탐색부터 구조 시뮬레이션까지 R&D 워크플로우를 일원화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역시 과기정통부 국책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되어 AI가 항원 서열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최적 서열을 통합 제안하는 ‘자율형 mRNA 연구개발 체계’ 구축에 나섰다.

AI 전문기업 아이디바인과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정부 바우처 사업으로 11억9000만건의 데이터를 활용한 전용 AI 플랫폼 ‘GI-Orus’를 구축, 면역항암제 ‘GI-102’의 임상 성공확률(PoS)을 정량 분석한다. 동물용 의약품 기업 바이오드는 중기부 초격차 과제를 통해 생성형 AI 기반 조류인플루엔자(AIV) 변이 예측 및 백신 설계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제조·사무·유통 AX 확산…‘인력 부족’ 대관·인프라 지원 시급

지오영 인천 스마트허브센터에서 직원이 자동화 물류 설비를 활용해 의약품 출고 작업을 하고 있다. [지오영 제공]
지오영 인천 스마트허브센터에서 직원이 자동화 물류 설비를 활용해 의약품 출고 작업을 하고 있다. [지오영 제공]

신약 R&D를 넘어 제조, 규제 대응, 유통 현장으로의 AX 전파도 거세다. 의약품 유통 공룡인 지오영은 창립 24주년을 맞아 발주부터 입고, 출고, 결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 AI 기반 워크플로우를 이식하는 전사적 AX를 선언했다. 물류 현장의 입고와 매입반품, 출고 지시는 물론 재고 관리와 정밀한 배송 경로 설계까지 AI를 결합하고, 경영관리의 결산 프로세스를 실시간 AI 체계로 전환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셀트리온은 신규 원료의약품 4·5공장에 자율이송로봇(AMR)과 지능형 로봇팔 및 협동로봇, 제조 관리 소프트웨어 등을 투입하는 ‘피지컬 AI’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할 방침이다. 공장 준공 시점까지는 우선적으로 정형화된 작업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이후 고부가가치 판단 업무 등에 AI를 접목해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장기적으로는 기술 성숙도에 따라 휴머노이드까지 투입해 인간 수준의 비정형 고난이도 업무도 무인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차바이오텍은 과기정통부 ‘AX 원스톱 바우처’ 사업을 통해 세포치료제 상용화의 최대 병목으로 꼽히는 CMC(제조·품질관리) 규제 문서 작성을 자동화하는 생성형 AI SaaS 플랫폼 구축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계의 높은 의지에 비해 현장의 AI 전문인력 가뭄은 심각한 수준이다. 협회 조사 결과 신약개발 부서 내 AI 전문인력이 전혀 없다고 답한 비율이 67.3%(37명)에 달했다. 인력 부재의 주요 원인으로는 자금 및 리소스 부족(26명)과 내부인력의 AI 기술 이해 부족(19명)이 꼽혔다. 산업계는 정부와 유관기관에 AI 전문인력 양성(37명)과 데이터 공유 플랫폼 구축(25명), 투자 지원(23명)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주문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AI를 활용해 임상 승인률을 높이고 R&D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상황에서 AI 도입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정부 차원의 데이터 인프라 개방과 실증 지원, 인재 양성 생태계가 뒷받침되어야 글로벌 AX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