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악수술후 출혈, 대학병원 응급실행
일시 안정 4시간 뒤 사지마비 날벼락
응급실 주의의무 위반, 6억 손배청구
法 “예측 어려웠고 주의의무 위반없어”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사지마비 환자가 됐다. 도무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불행이 가족을 덮쳤지만 가족은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했다.
불행의 시작은 지난 2020년 1월 17일이었다. 외부 의료기관에서 양악수술을 받고 이튿날 퇴원했던 A씨는 좀처럼 멈추지 않은 입과 코의 출혈, 얼굴 부종으로 같은 해 1월 19일 오전 6시36분께 부산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병원 의료진은 A씨에 대한 산소포화도 측정에 들어갔다. 입과 코에서 출혈이 계속될 경우 흘러내린 피가 목구멍 뒤쪽(기도)으로 넘어가 호흡곤란이 올 수 있어서다. 기도를 확보하기 위한 석션(흡입·기도 확보를 위한 의료행위)도 진행됐다. 이윽고 A씨의 호흡곤란은 잦아들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A씨에게 기도 폐쇄 증상(부기 및 호흡곤란)이 나타났고, 산소포화도는 46%까지 떨어졌다가 정상(일반 산소포화도 95~100%)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병원 의료진은 심전도 측정, 호흡기 치료기(네뷸라이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과 코로 호흡이 불가능했던 A씨 경과에 따라 기관절개술을 시행하려 했고 목구멍 전용 내시경 검사(후두경 검사)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수동식 인공호흡기구, 석션 시행, 응급 소생물품 구비 등이 차례로 이뤄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20년 1월 19일 오전 10시께 병원은 A씨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중지했다. A씨가 저산소성 뇌손상 후 사지마비, 뇌전증 등의 진단을 받기까지 채 ‘네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예뻐야 할 나이에 A씨는 평생 누워 살아야 할 환자가 됐다.
A씨 부모 “양악수술 합병증 고려 안 했나”
생때같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A씨가 양악수술을 받은 후 입과 코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았던 만큼 합병증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호흡곤란과 과다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A씨 가족은 ▷병원이 A씨 기도 폐쇄 증상 발생까지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A씨가 응급실에 내원한 지 세 시간이 지나서야 후두경 검사를 시행한 점 ▷후두경 검사 시행 시 응급 상황 준비 미비 ▷응급 처치를 제때 하지 않음에 따라 A씨가 심정지에 이른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쉽게 말해 병원의 진료상 주의 의무 위반을 주장한 것이다.
또 병원 측이 응급실 내원 당시 A씨에게 기도 폐쇄 등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면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동해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응급실에 내원한 지 ‘두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야 기도 폐쇄 위험성, 사망 가능성 등을 구두로 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병원의 설명 의무 위반을 주장했다. 하지만 어려운 싸움의 결말은 모든 주장에 대한 기각이었다.
法 “응급발생 예상 어려워…손배 기각”
부산지방법원서부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김동희)는 A씨와 가족의 ‘6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핵심은 기도 폐쇄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병원 측의 대처가 적절하지 않은 조치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의료 분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대법원 판례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가 당시 의료 수준에 비춰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에서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22년 12월 29일 선고)’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료 행위의 고도의 ‘전문성’으로 인한 특수성, 이에 따른 의사-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을 인정하면서도,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 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24년 9월 27일)’는 내용이다.
이를 기초로 법원은 병원이 진료상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A씨 응급실 내원 이후 산소포화도 측정을 시작한 점, 산소포화도 측정 결과 100% 및 호흡곤란 증상이 확인되지 않은 사례도 있는 점, A씨가 산소흡입 중 제자리 배뇨를 하지 않고 화장실을 다녀온 점, 응급실 내원 후 두 시간가량 호흡 이상 증상이 없었던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병원이 A씨의 기도 폐쇄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나아가 타 의료기관의 사실조회 회신 결과를 인용해 응급실 내원 당시 호흡곤란이나 정지가 온 상태가 아니라는 점, 기도 폐쇄가 이미 진행됐을 것이란 건 사후 관점에서 평가라는 점 등도 고려됐다.
동 병원의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에 따라 기도 폐쇄 예방을 위한 기도 삽관의 경우 기도 부종으로 인한 실패확률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빠르게 시행했더라도 기도 폐쇄 등을 회피할 수 있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했다.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후두경 검사 당시 응급 상황 대처가 미비하다거나 응급 처치 과실 여부 등에 대해서도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세부적으로 산소포화도 측정 결과가 46%로 낮아졌을 당시 석션 시행 및 응급 소생물품 준비, 심전도 측정 후 산소 흡입 경로 변경, 기관절개술 예정 및 물품 준비 언급, 수동식 인공호흡기구 사용, 심폐소생술 지속 등 일련의 행위를 인정했다.
이외에도 산소포화도 감소가 석션 후 해소됐다는 점을 들어 후두경 검사가 기도 폐쇄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을 물리쳤다.
설명 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A씨가 응급실 내원 당시 기도 폐쇄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웠다”며 “병원 의료진에게 위와 같은 응급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주의 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어 병원이 A씨 기도 폐쇄 증상이 확인되자 응급조치를 즉시 시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의사가 A씨 어머니에게 삽관이 어려운 상황으로 시술이 필요한 데 합병증 및 사망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한 점, A씨 응급 상황 확인 후 관련 설명을 진행했다는 점 등도 인정됐다.
고재우 기자
k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