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이탈리아에는 한해에 8주 동안의 유급휴가가 있다. 결혼하면 허니문을 다녀오라고 15일을 더 얹어주고, 시마다 축성일이 있어 그날은 또 휴일이다. 8월 한 달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휴가 시즌, 대부분 노는 날이다. 12월 말에는 두 달치의 월급을 받는다. 이들은 휴가 비용을 이 ‘13월의 월급’으로 충당한단다.
이탈리아의 한 의류 회사 CEO에게 물었다. “그렇게 주면 뭐가 남죠?” 돌아오는 말은 현답이었다.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풀려면 휴가를 가야 하고, 그래야 옷도 잘 만들죠.”
한 미국인이 성조기 하나만 들고 맨몸으로 ‘침공’에 나섰다. ‘볼링 포 콜럼바인’(2003)으로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고 ‘화씨 9/11’으로 제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62)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다.
“계속해서 성과 없는 전쟁을 벌이고 IS 같은 테러단체가 등장하도록 방관한 것을 후회하는” 미국 국방부는 어느날 마이클 무어에게 SOS를 보낸다. 그는 드론 공습, 군대 주둔 대신 ‘1인 외교사절단’으로 비밀리에 파견된다. 각국의 “잡초가 아닌 꽃”들을 따서 미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목표다. 그의 기발한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일 년에 8주 유급휴가와 13월의 월급이 나오는 이탈리아, 기름에 튀긴 ‘프렌치 프라이’는 어디 가고 건강한 4 코스의 만찬이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프랑스, 숙제를 없애고 교육 수준 1위로 도약한 핀란드, 무상 대학교육을 시행한 슬로베니아, 과거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도록 가르치는 독일, 의회 의석 반이 여성이고 히잡도 강요되지 않는 ‘양성 평등한 이슬람 국가’ 튀니지까지, 그의 침공은 9개국에 이른다.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조국’ 미국과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형성된다. 초과근무에 시달려 가정은 뒷전이 된 사람들, 스트레스를 풀 만큼의 휴식도 주어지지 않는 노동 환경, 도저히 아이들에게 먹이면 안 될 것 같은 부실 급식,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성공한다는 경쟁적인 인식 등, 당장 미국의 현실을 한국으로 치환해도 놀랍도록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새 ‘탈조선’(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는 뜻의 신조어)의 꿈까지도 마음에 새겨진다. 마이클 무어가 침공한 나라들을 펼쳐놓고 “어디로 이민을 가볼까”하며 ‘이민 쇼핑’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는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해서 무거운 진심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초반 마이클 무어는 이탈리아의 8주 유급휴가제도를 ‘약탈’해 가면서 “침공이 이렇게 쉬워요? 조금만 지나면 미국의 것이라고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인데도 괜찮아요?”라고 익살스럽게 묻는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자유로운 교육과 양성평등과 같은 가치는 ‘원래 미국이 갖고 있었지만 잊어버린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가치를 일깨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외신들은 “마이클 무어다운 빈틈없는 다큐멘터리”(롤링스톤), “무어의 팬층이 더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 영화”(할리우드 리포터), “마이클 무어가 격렬한 비판의식과 장난기로 무장하고 세계 정복에 나섰다”(버라이어티)는 등 호평을 쏟아냈다.
2015년 토론토영화제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5월 진행된 제13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8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1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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