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를로 첫 한국인 무용수 안재용
역작 ‘백조의 호수’ 韓공연서 관객압도
18세에 뒤늦게 발레 입문해 초고속 성장
“내면수양 중요…좋은사람 되려 담금질”
왕자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보다 속아 넘어가는 순간,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파국의 과정에서 더없이 인간적이다. 사랑스러운 오데트를 다시 만났다. ‘평생의 짝’을 마침내 찾은 왕자는 소년이 된 것처럼 행복에 취한다.
안재용의 지그프리트 왕자는 춤추는 순간과 춤추지 않는 순간을 ‘일상의 호흡’으로 메운다. 과장된 마임 대신 일상의 몸짓으로 툭 흘러나온 동작. 그 짧은 여백 속에서, 객석은 고전 발레 속 박제된 왕자가 아닌 현실에 존재할 법한 뜨거운 인간을 본다.
그의 춤은 고난도의 클래식 테크닉 위에서 정교하게 완성됐다. 길게 뻗는 아라베스크는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고, 중심을 깊게 누른 채 이어지는 회전은 감정을 집어삼킨 사람처럼 묵직했다.
3년 만의 한국 공연을 마치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안재용은 “관객을 만나는 것은 늘 소중한 경험이지만, 고국 무대는 더 특별하다”고 했다.
안재용과 몬테카를로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내한이 확정된 지난해부터 이 공연은 발레계 최고의 관심사였다. 세계적인 안무 거장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이끄는 발레단이 한국에서 선보인 작품 ‘백조의 호수 락(LAC)’은 기존 클래식 발레를 완전히 뒤엎은 역작이다. 그 중심엔 단연 ‘마이요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몬테카를로 수석 안재용이 있었다.
안재용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8살에야 발레에 입문했다. 소년 시절의 꿈은 “불의의 사고로 외형적 변화를 겪은 사람들의 삶을 재건해 주는 성형외과 의사였다”고 한다.
발레를 마주한 건 ‘한 번의 경험’ 때문이었다. 소프라노인 누나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발레 공연을 보러 갔다. 무대가 시작되자, 남성 무용수들의 강렬하고 압도적인 에너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그의 인생 항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18살의 몸이 발레를 시작하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다. 하루에 2시간짜리 클래스를 5개씩 들었다. 매일 10시간 이상 연습실에서 정직하게 땀을 쏟았다. 타인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스승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르자 성장엔 가속이 붙었다. 발레 입문과 동시에 선화예고로 편입했고, 스무 살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발레 시작 2년 차에 거둔 이 성취는 발레계의 미스터리다. 안재용은 “실력보다는 가능성을 더 많이 봐준 것 같다”고 웃었다.
마이요의 작품을 보고 발레를 시작한 그의 꿈은 마이요의 ‘예술 세계’로 향하는 것이었다. 한예종 시절 그의 스승인 김용걸도 몬테카를로 오디션을 권했다.
오디션 당일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마이요 감독이 없어 영상으로 남기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매니저가 뛰어왔다. 2016년 1월이었다. “마이요가 지금 막 극장에 도착해 널 찾는다”며 빨리 단장실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만난 감독은 ‘오! 마이 뉴 보이(Oh, my new boy)’라며 즉석에서 계약서를 건넸다.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었다. 마이요 감독은 그를 데리고 다니며 ‘새로운 정단원’으로 소개했다. 몬테카를로 역사상 첫 한국인 무용수였다. 발레에 입문한 지 고작 5년 만에 이뤄낸 꿈의 랑데부였다.
안재용은 “발레는 그것 자체로 우리의 생각과 철학을 정직하게 번역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이요 감독이 강조하는 것 역시 이 지점이다. 기계적 스텝이 아니라 말하듯이 몸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을 0순위로 둔다.
“마이요 감독님의 안무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예요. 기본이 무너진 채로 연기만 한다면 그건 발레극이 아니라 연극이 되는 거니까요.”
말을 하듯 자연스러운 ‘몸의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안재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내면의 수양’이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미술관을 가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경험이 그에겐 춤의 일부다. 그는 “매일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담금질 한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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