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선)= 남화영 기자] 올해 2월에 하이원리조트는 ‘2016 세계명상대전’을 열었다. 푸른 눈의 성인으로 우러름을 받는 아잔 브람 스님과 묵언 수행의 대가인 태국의 아잔간하 스님, 대만의 심도선사와 한국의 혜국스님이 이곳에서 명상 대토론을 벌였다. 골프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네 명의 고승들의 손도장이 새겨진 명상 쉼터도 나온다. 해발 고도 1137m에서 열리는 골프라고 하면 비거리가 멀리 날아가는 혜택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다 비거리에 고민하는 아마추어 범인(凡人)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다. 높은 경지에 있는 고수들의 세계는 그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프로 선수에게는 페어웨이가 좁은 코스라서 마음을 다스려 쳐야 하는 정교한 무대일 뿐이다. 국내 제일의 장타자 박성현(23 넵스)은 이곳에서 27홀 동안 10오버파를 치면서 헉헉대다가 결국 중도에 기권하고 말았다. 마지막 라운드 첫 홀에서 공동 선두에 오른 고진영(21 넵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2라운드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마칠 때쯤 어느 기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박성현 기권하는 대회마다 우승하는데 이번 대회도 우승하는 거 아냐?” 그 말에 다들 웃었고 고진영도 따라 웃었다. 다음날도 선두는 고진영이었다. 3라운드까지 와이어 투 와이어 선두이니 그럴 법했다.
올 시즌 2승에 상금 2위, 평균 타수 2위로 1위를 빼면 모든 것을 가진 고진영의 마음은 마지막날에 ‘우승’이란 두 글자를 염두에 뒀을 법하다. 그러면 시즌 3승이 된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상대 선수를 보면, 공동 선두이자 아직 우승이 없는 김예진과 2타차 뒤에서 따라오는 김해림(27 롯데)이었다. 1번 홀(파4 326m)에서 O.B.(아웃오브바운즈) 두 방을 시원하게 때려낸 다음 쿼드러풀 보기로 홀아웃했을 때 고진영의 마음 자리에는 무엇이 스쳐갔을까. 고진영은 이날 10오버파를 기록하면서 16위로 대회를 마쳤다. 투어 2년차의 김예진(21 넵스)은 올해는 출전한 22개 대회 중에 13개 대회에만 본선을 통과해 상금 순위 51위(7975만원)에 올라 있었다. 넥센세인트나인마스터스 6위가 최고 성적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올 시즌 말에 악명높은 시드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마지막날 챔피언조에서 우승 경험이 가장 적은 선수이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가자. 대회 전날에 서로 친한 4명의 선수가 18번 홀 위로 나 있는 산책길을 걸었다. 물론 하이원리조트가 올해 밀고 있는 하늘길, 처녀치마길을 걷는 이벤트성 산책이었다. 김혜윤(27 BC카드), 박성원(23 금성침대), 박채윤(22 호반건설)까지 네 명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소속 선수가 대회 전날 공식연습일 아침에 하늘길 중에서도 코스가 잘 보이는 처녀치마길을 찾아 산책과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라운드가 끝나는 시간으로 돌아와보자. 김예진은 버블보기 한 개에 보기와 버디 세 개씩을 거두어 2오버파 74타를 적어내 종합 5언더파 283타로 우승했다. 김해림이 버디 3개에 보기 5개를 적어내 2오버파 286타로 3위로 내려갔다. 김보경(30 요진건설)이 14번 홀부터 4개의 버디를 몰아치면서 버디 6개에 보기 3개로 3타를 줄여 3언더파 285타로 2위로 올라섰다. 김예린은 3라운드를 마치고 공동 선두로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방 선수의 플레이에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캐디를 하는 아버지하고만 얘기하고 내 경기만 하겠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자신만의 경기에 몰두했는지 혹은 상대방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아 자신감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3라운드까지 5,6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5타차 선두로 치고 나갔다. 3일까지 난이도 5.464타로 가장 어려운 홀이었던 5번(파5 535m) 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파3 6번 홀에서도 버디를 추가했다.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었다. 어려운 7번 홀에서도 1m 파를 앞에 두고 무난히 파를 잡을 상황. 이때 아버지가 퍼팅을 하는 딸에게 우산을 그대로 받쳐주었다. 골프룰상 불의의 혜택을 얻으면 2벌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경황 중에 아버지는 실수를 한 것이다.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9번 홀에서 그 상황을 설명하고 2벌타를 부과했다. 그래도 3타차 단독 선두는 유지됐으나 김예진이 힘을 냈다. 9, 10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1타차까지 따라잡았다. 자칫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3일동안 5.449타로 두번째로 어려운 11번(파5 527m)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면서 2타차로 달아났다. 그리고는 그대로 우승을 향해 질주했다. 대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김예진은 7번 홀 상황 그 이후를 설명했다. “아빠가 원래 쾌활한 분인데 9번 홀 이후로는 아무 말씀도 못하고 제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시더라. 그래서 원래 아빠가 하던 농담을 내가 했다. ‘아빠, 두 홀 건너 버디하자’고 했제. 이번 홀은 어떻게 할까?” 그리고 11번 홀에서 실제로 버디를 잡았다. 비가 계속 오다 말다를 반복했지만 두 사람은 더 이상 우산을 쓰지는 않았다. 그 말썽 많던 우산은? “그 이후로는 안 썼어요. 우리가 우산이 왜 필요하냐고?” 그렇게 비를 맞으며 부녀는 라운드를 마쳤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한다. 그건 당연한데, 고수들의 세계에서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 게 진리에 닿는 길이기도 하다.
대회 전날에 명상의 길을 걸은 뒤에 우승의 영광을 안은 김예진에게 우산없이 진군하는 용기와 부모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년에 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부탁한다. 내년에는 하늘길에서 명상하고 라운드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갤러리에게도 부탁한다. 이번 대회에 하늘길 산책로에 보물찾기 이벤트를 걸었다. 엄청난 상품이 대박 걸려 있었는데 비가 와서 올라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후문이다. 대박은 강원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길 걷는 걸음걸음이 대박이요 명상인 것을. 대박이 아니라도 하늘길을 걸으면 건강에 좋고 마음도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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