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베네수엘라 대표 야권 지도자 마차도
노벨평화상 수상후 “트럼프에 바친다”
트럼프 “마차도 발언, 매우 친절” 흡족
베네수 철강거물 장녀…타고난 ‘금수저’
빈곤아동 격리시설 방문뒤 각성…비영리단체 설립
투표 감시단체 ‘수마테’·反정부 ‘벤테 베네수엘라’ 창당
반정부 투쟁 지속…美등 주변국의 외교적 압박 활용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트럼프 대통령, 미국 국민들, 남미 국민들,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주요 동맹으로 여기고 있다. 이 상을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국민에, 그리고 우리의 대의를 결정적으로 지지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린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베네수엘라 야권 여성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가 선정됐다. 자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십년간 투쟁을 인정받아 ‘베네수엘라의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외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마차도가 “커져가는 어둠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내는, 용감하고 헌신적인 평화의 옹호자”라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20번째 여성이자, 베네수엘라 역사상 첫번째 수상자이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수십년간 공격에도 불구하고 마차도가 자유선거와 제도 개혁을 위해 끈질기게 헌신한 점은 서방 주요 국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보다 ‘수상소감’이 세계적 이목을 더 끌었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길 고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콕 집어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상을 실제로 수상한 사람(마차도)이 오늘(10일) 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상을 받습니다. 당신은 정말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매우 좋은 일”이라며 흐뭇해 했다.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인 마차도는 왜 자신의 수상 소감에 최근 글로벌 관세 전쟁을 불러일으키며 국제적 비판 여론을 등에 업은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한 것일까.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을 호명한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에 관심없던 부유층 여성, ‘빈곤 아동’ 현실에 사회적 각성
마차도는 베네수엘라에서 알아주는 ‘금수저’ 출신이다. 다른 반(反)체제 인사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유복함이 그의 삶의 뿌리라는 점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1967년 10월 7일,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마차도는 철강 산업계 거물 엔리케 마차도 술로아가와 심리학자인 코리나 파리스카 페레스의 딸이다. 네 딸 중 장녀이다. 그의 출신 배경은 오히려 마차도의 정치활동 이후 베네수엘라 집권당으로부터 비판의 표적이 될 정도다.
젊은 시절 마차도는 착실히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그는 카라카스의 명문 가톨릭 여학교에 다녔으며,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웰즐리에 있는 다나 홀 보딩스쿨에서 공부했다. 안드레스 베요 가톨릭대학교에서 산업공학 학위를 받고, 행정고등연구소(IESA)에서 재무학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 교육을 마친 뒤엔 가족이 소유한 철강회사 ‘시벤사’에 입사한다. 언뜻보면 국내 재벌 2세들의 가업 승계 행보를 연상케 할 정도다. 그런데 평탄하던 살던 20대 마차도에게 사회적 각성을 불러일으킨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그녀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들을 괴롭히는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에도 무관심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거리에서 구조된 노숙 아동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수용하는 보호시설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녀는 그 복합시설이 “감옥 같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담을 타고 올라가 밖으로 이어지는 개울로 뛰어내리며, 거리 생활로 돌아가려고 자주 도망쳤다.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마차도는, 그 시설에 진동하는 악취 때문에 신체적으로 구역질을 느꼈다.
2004년 7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보면, 1990년대 초반 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마차도는 자신의 모친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한 시설을 방문한다. 현재 자녀 3명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차도는 당시 임신 상태에서 구토를 할 정도로 열악했던 베네수엘라의 현실에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 경험이 마차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차도의 각성이 그의 어머니(코리나 파리스카 페레스)를 통해 구체화되고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구토를 느낄 정도로 열악한 아동 시설에 처음 마차도를 데려간 것도 그의 모친이었고, 1992년 마차도가 카라카스의 빈곤 아동을 돕는 비영리단체 ‘아테네아 재단’을 설립할 때 이 단체의 공동 설립자 역시 모친이었다.
마차도 모친의 발언도 범상치 않다. 1998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모친은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을 담은 발언을 쏟아낸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늘날의 마차도에게 정치 활동의 방향을 가이드한 듯한 인상을 줄 정도다. 마차도 모친은 빈곤 아동을 돕는 활동이 단순히 아이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사회정치적 변혁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마차도 스스로도 2023년 8월 스페인 매체 ‘자유로운 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모친에게서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한계를 극복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저는 항상 제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찾고 불러서 조직화하고 시민적·집단적 혜택이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저는 ‘아테네아 재단’이라는 이러한 형태를 통해 우리가 가장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저는 모든 베네수엘라 국민과 개인들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사회적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청소년이 미래라고 계속 말하는 것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그들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오늘날 학교를 중퇴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감옥의 폭동과 만원인 감옥에 대해 불평할 수 있겠나?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략)
저는 아테네아 재단과 유레카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큰 연대 의식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험은 ‘시민의 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재교육이다.
(중략)
저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며, 이는 엄청난 저항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고 본다. 여성은 내부적으로 생명을 낳으며, 이는 자신의 건강, 피, 에너지, 모유를 희생하는 대가로 이루어진다. 이 사실 때문에, 여성은 가족 단위에 대한 더 큰 이해심을 갖게 된다.
1992년부터 비영단체 운영…2000년대 초반부터 ‘투표’를 통해 정치 개혁 시도
1992년은 육군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에 쿠데타를 일으킨 해다. 쿠데타 실패로 옥고를 치르긴 했으나 차베스는 1998년 빈곤층 다수를 구하겠다는 약속으로 1999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점점 독재로 변했다. 취임 후 제헌의회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행정부 권한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신헌법을 제정했다.
2002년 베네수엘라 사회가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자 마차도는 정치적 운동을 본격화한다. 마차도는 일찌감치 ‘요주의 인물’로 정부 견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선거 투명성 감시와 정치적 권리 수호라는 명분으로 경영 컨설턴트인 플라즈와 함께 비정부기구 ‘수마테’를 공동 설립했다. 수마테는 스페인어로 ‘함께하라’라는 뜻이다.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체로 나아가자는 함의를 담았다고 한다.
수마테는 선거 감시 교육과 더불어 시민들이 투표 절차를 관찰하고, 부정 사례를 기록하며 동시에 선거관리위원회에 책임을 요구하는 방법을 가르친 조직이다. 수마테는 불과 2년만에 자원봉사자 3만명이 넘는 대중 조직으로 성장했다. 마차도는 국가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총탄보다 투표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차베스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후 체제를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부르며 ‘직접 민주주의’의 시험대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선전하는 명목으로 신헌법에서 국민투표를 통한 공직자 소환을 규정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마차도는 수마테를 중심으로 차베스 소환을 위한 국민투표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 투표는 투·개표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낳으며 결론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 활동으로 인해 마차도는 차베스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면서 ‘반역’ 혐의로 기소되고, 차베스 지지자들의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된다. 마차도는 자신의 자녀들을 해외로 도피시켰다.
이후 수마테는 ‘투표 감시’를 넘어 ‘핵심 야권 단체’로 변모한다.
2005년 5월 마차도는 백악관 초청을 받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났는데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내 민주주의 확산에 관해 관심이 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차베스의 정적을 미국이 지원하는 ‘도발’을 한 것이란 평가를 내놨다.
2010년대, 국회의원 당선되며 제도권 정치인으로서 반정부 투쟁 지속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마차도의 정치 활동은 차베스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요약되는 이념인 ‘차비스모’ 구현 기간과 겹친다. 차비스모는 자원 강국인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수출해 얻은 이익을 에너지 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정부가 챙기고, 이를 통해 각종 복지 정책을 실현하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차베스 정부는 ‘반미’(反美)를 기치로 내걸고 외국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석유 산업을 비롯해 전력·통신 등 주요 인프라를 국유화했다.
2004∼2008년쯤엔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100달러로 급등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유가 하락이 발생하자 베네수엘라 경제는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마차도는 2010년 공식적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그해 선거에서 정의우선당 소속으로 베네수엘라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나는 국민이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를 지킬 것”이라며 빈민가를 돌며 폭력 범죄 확산, 정전 사태, 심각한 주택난, 3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등 문제를 부각시켰다.
마차도는 당시 최다 득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대중적 주목을 받았다. 특히 전국 생중계된 회의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며, “국유화는 도둑질이다(Expropiar es robar)”라고 외친 장면이 국민적 화제로 부상했다.
2012년에는 중도 자유주의를 내건 정당 ‘벤테 베네수엘라’를 창당했다. 마차도의 정치 활동의 뿌리가 된 정당이다. 마차도는 이후 이 단체를 통해 투명한 민주주의, 국영기업 민영화 등의 경제 자유화 개혁을 주장하고, 빈곤층을 돕기 위한 복지 프로그램 신설에 앞장섰다.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자 베네수엘라는 또 다른 독재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야권 인사를 괴롭히고 피선거권을 박탈하거나 망명하도록 압박했다.
마두로는 강력한 생필품 가격 억제와 산업 분야 국가 통제 강화 정책을 이어갔는데, 이는 저유가 직격탄에 더해 경제위기를 부채질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까지 더해지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마차도는 다른 야권 지도자들과 함께 2014년 2월에 마두로 대통령의 사임과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전국적 운동 ‘라 살리다(출구)’를 조직했다. 반정부 시위가 급격히 퍼지며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40여명이 숨지고 800명 이상 다쳤다.
마두로 대통령은 같은해 3월 마차도를 불법적으로 의원직에서 내쫓았다. 마차도가 파나마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간 미주기구(OAS) 회의에서 마두로 정부를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마두로 정부가 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케 한 것. 그러나 독재 정권에 의해 쫓겨난 의원이라는 사실은 마차도에게 오히려 ‘훈장’이 됐다.
2015년 전후로는 주민들이 음식과 생활용품을 구하려고 쓰레기통과 무덤을 뒤지거나, 집을 버리고 인접국으로 이주하는 모습 등이 언론에 수시로 보도될 정도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마차도는 2017년에 야권 지도자들과 함께 ‘소이 베네수엘라’ 연합을 결성했다. 이 연합은 당시 마두로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하던 야권 온건파에 반대하는 강경파 야권 인사들이 결집한 정치·시민 연합체다. 전국 각지의 지지자와 시민단체가 동참하는 네트워크형 연합체이다.
그럼에도 마차도는 마두로 정권하에서 대선 출마 자격을 잃거나 친정부 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를 돕던 주변 인물들이 대거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마차도의 많은 정치적 동지들이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대선 주자로 베네수엘라 독재 정권에 맞서다
2023년 마차도는 대선 도전에 나서며 베네수엘라 정계에 복귀했다. 열악한 선거운동 환경 속에서도 주로 지방 중소도시를 돌며 선거운동을 이어가 야권 경선에서 200만표 이상을 얻었다. 그는 자동차나 도보로 전국을 순회하는 투박한 유세를 하며 유권자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그러나 마두로 정부가 마차도에 대해 출마 금지 조치를 단행하자, 그는 정치적 동지이자 전직 외교관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야권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그러나 2024년 7월 마두로 대통령이 또다시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자 시민들 사아에서 선거 부정 의혹이 잇따랐고, 국제 감시단은 해당 투표를 “공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전국적으로 시위가 발발했다. 마두로 정부는 반정부 세력이 쿠데타를 모의했다며 강경 진압에 나서 약 2000명을 체포했다. 이후 대부분은 석방되었지만, 마차도와 마차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포함한 핵심 측근 수십 명이 체포되거나 숨어야 했다. 곤살레스는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마차도 역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은신하겠다고 알렸다. 그러다 같은해 8월, 마차도는 카라카스 거리 시위에 등장해 “이제 매일매일이 새로운 투쟁의 단계”라며 지지자들을 다독였다.
올해 1월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 직전 발발한 시위에서 마차도는 체포됐다가 석방되기도 했다. 마차도는 당시 “그들은 우리를 서로 싸우게 하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하나로 뭉쳐 있다”고 외쳤다. 현재 마차도는 은신 중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은 마차도와 곤살레스를 ‘사하로프 사상 자유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유럽의회는 마차도를 “베네수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국민을 대표한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의 변화를 위해 미국과 서방세력에 의존하는 마차도
올해 노벨평화상 발표 당시 “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친다”는 마차도의 말은 화제가 됐다. 그는 어떤 생각에서 이같은 메시지를 남긴 것일까.
2023년 8월 스페인 매체 ‘자유로운 글’은 인터뷰를 통해 마차도에게 ‘트럼프주의와 함께 베네수엘라 군사침공에 기여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앞서 트럼프 1기 정부 때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마두로가 ‘미국에 마약 수출을 하는 불법적인 지도자’라며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에 힘을 실으려 했다. 그는 2020년 대선 직전 베네수엘라 침공을 강력히 제안했으나,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차도에 대한 비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의 강경 우익 정당과 합력한다거나, 브라질의 극우 성향 지도자들과 친밀하고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차도는 질문에 대해 “아직도 ‘내가 카라카스를 폭격하자고 했다’는 식의 거짓말이 떠돌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제가 주장한 것은 국제사회가 마두로 정권을 강력히 압박하여, 자유 선거를 열고 인권 침해를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정치에서는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다”며 “저는 사민주의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스페인의 펠리페 곤살레스, 칠레의 리카르도 라고스, 미첼 바첼레트를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는 민주당, 공화당 양측 모두와 접촉이 있다”며 “민주주의의 규칙을 존중하는 한 모든 지지를 환영한다”고 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뒤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마약 거래를 거론하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이 승인됐다고 전했다.
마차도의 반정부 투쟁은 종착 시기를 모른 채 습기를 가득 안고 달리는 열차처럼,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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