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여자중고등학교 뒤편, 산불 피해 현장에서 자라나는 참나무 새싹.[그린피스 제공]
경북 청송여자중고등학교 뒤편, 산불 피해 현장에서 자라나는 참나무 새싹.[그린피스 제공]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국토 1.5%를 잿더미로 만든 재난.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지나간 뒤, 피해 복구는 물론 향후 산불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려는 각종 대책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인간의 개입’이 되레 산불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연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방어막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불에 탄 숲을 그대로 두면 오랜 과정을 거쳐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웬만한 산불·홍수를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문제는 그 틈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 피해 지역에 급하게 조성되는 인공 숲과 숲속 도로. 그리고 자연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개발 사업 등이 그 예다.

‘소나무’만 심었는데…산불 ‘땔감’ 역할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 가운루를 비롯한 건물들이 전날 번진 산불에 모두 불에타 흔적만 남아 있다. 이번 화재로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와 연수전 등이 소실됐다. 의성=이상섭 기자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 가운루를 비롯한 건물들이 전날 번진 산불에 모두 불에타 흔적만 남아 있다. 이번 화재로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와 연수전 등이 소실됐다. 의성=이상섭 기자

21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상황별 산불 시뮬레이션 결과와 함께 산불 현장 답사 결과가 담겼다.

보고서는 산불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 종의 나무를 위주로 구성된 산림 환경에서 산불 피해가 더 크게 발생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올해 영남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산불이 그 대표적인 예다.

대구 북구 노곡동 함지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연합]
대구 북구 노곡동 함지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연합]

우리나라의 산림 조성은 오랜 기간 소나무 단순림(한 종의 나무만 집중적으로 심은 숲)을 중심으로 이뤄져 온 바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수 산림이 파괴됐고, 경제성과 관리 편의성이 좋은 소나무를 위주로 조림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

그린피스가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과 숲의 구성, 지형 형태 등에 따라 설계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침엽수 단순림은 산불 시작 2시간 뒤 시점에서 혼합림에 비해 1.5배가량 더 큰 피해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가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과 진행한 산불 시뮬레이션. 침엽수 단일림에 비해 혼합림의 산불 확산 속도가 더디고, 산불 피해도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가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과 진행한 산불 시뮬레이션. 침엽수 단일림에 비해 혼합림의 산불 확산 속도가 더디고, 산불 피해도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린피스 제공]

지난 4월 말 산불 피해가 집중된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진행된 현장 답사에서도 시뮬레이션과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침엽수가 주를 이루는 지역은 피해가 극심했던 반면, 다양한 수종이 혼합된 혼합림과 활엽수림 지역은 피해가 적었다.

아울러 활엽수와 비교해,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의 지역에서 피해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정유(기름) 함유량이 높은 침엽수가 연료 역할을 하며 피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

산불 피해가 심했던 경상북도 주왕산 국립공원 내 달기약수터. 침엽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그린피스 제공]
산불 피해가 심했던 경상북도 주왕산 국립공원 내 달기약수터. 침엽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그린피스 제공]

경상북도 주왕산 국립공원 서쪽 입구에 있는 관광지 ‘달기약수터’의 경우 이번 산불에 큰 피해를 봤다. 약수터 일부가 완전히 소실됐고, 나머지도 재와 그을음으로 오염됐다. 달기약수터 주변의 침엽수 비중은 78%에 달했다.

하지만 차량으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너구마을’은 대부분 보존됐다. 해당 마을 주변에도 소나무 등 침엽수가 있었다. 하지만 활엽수가 유사한 비율로 존재했다. 활엽수 군락에서 불이 한풀 꺾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산불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경상북도 주왕산 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활엽수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그린피스 제공]
산불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경상북도 주왕산 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활엽수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관계자는 “침엽수림이 활엽수립에 비해 산불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게 사실이지만, 초대형 산불의 경우 활엽수림도 상당한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며 “다양성과 복합적인 수종 구성이 산불 피해를 줄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자연 회복까지는 먼 길…“보전 정책 강화해야”

그렇다면 산불 피해 지역에 활엽수와 침엽수를 번갈아 심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까. 보고서는 ‘그대로 두는 것’이 향후 산불 피해 방지를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언급한다. 숲이 스스로 회복 과정을 거치며, 더 단단한 ‘방화막’이 설치될 수 있기 때문.

나무의 어린 잎을 만지고 있다.[독자 제공]
나무의 어린 잎을 만지고 있다.[독자 제공]

산림 내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해 포식, 기생, 공생과 같은 관계를 맺으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시간이 지나면 생물들은 균형을 이루며, 환경적 조건에 최적화된 생태계를 구성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는 참나무류가 경쟁력을 가지고 숲을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숲은 안정된 상태, 극상림(Climax Forest)에 도달한다. 극상림에서는 특정 지역의 지형과 환경 조건에 적합한 수종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이에 인간의 계획적 조림으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천연 ‘방화림’의 구조를 지니게 된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전남 장성군 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산 일원에 변산바람꽃이 개화한 모습.[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사무소 제공]
전남 장성군 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산 일원에 변산바람꽃이 개화한 모습.[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사무소 제공]

극상림은 높은 나무부터 작은 식물까지, 다양한 층의 식물 분포를 가진다. 비가 오면 토양의 침식을 방지해, 홍수 완화에 효과적이다. 또 활엽수가 풍부한 극상림은 소나무 단순림에 비해 잎의 밀집도가 덜하다.

이 때문에 산불 확산 억제가 쉬운 데다, 불에 탄 후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실제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복원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영국 새들워스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복원된 습지 지역에서 자연스레 진화되며 그 효과를 입증하기도 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국립공원 노고단일대에 진달래가 개화했다.[연합]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국립공원 노고단일대에 진달래가 개화했다.[연합]

현재 국내에서 극상림으로 분류할 수 있는 숲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등으로 산림이 대규모로 훼손됐고, 이후에도 등산로 개설, 관광지 개발 등 지속적인 간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산림 복원 작업 또한 인공림 형성을 중심으로 추진되며, 부작용을 낳았다.

문제는 앞으로도 ‘극상림’이 조성될지 미지수라는 것.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사례가 임도(산림 내 도로) 확충이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임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임도는 생태계 단절을 유도해, 자연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임도가 되레 산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립공원공단은 임도에서의 바람 속도가 숲속에 비해 최대 2.4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임도가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강원도와 양양군 관계자 등이 강원 양양군 서면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1번 지주가 들어설 곳에 첫 삽을 뜨고 있다.[연합]
강원도와 양양군 관계자 등이 강원 양양군 서면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1번 지주가 들어설 곳에 첫 삽을 뜨고 있다.[연합]

무엇보다 직접적인 개발 문제는 ‘극상림’ 조성을 방해하는 주된 요인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보호지역인 설악산에는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또한 자연 훼손이 거의 없는 생태자연도 1등급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개발이 진행돼, 생태계 훼손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산불 피해 후의 숲은 자연적으로 극상림까지 나아갈 수 있다”며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호지역과 이에 준하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 등에 대한 보전 정책을 강화하고 개발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woo@heraldcorp.com